싸이월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인맥 기반 커뮤니티서비스다. 특별한 사람들만 홈페이지를 갖고 있던 시절, 쉽고 편리한 서비스로 우리에게 `나만의 홈피`를 갖게 해준 서비스다. 2012년 현재 2600만명이 넘는 회원을 보유한 국내 최대 소셜네트워크 서비스인 싸이월드는 1999년 이동형, 형용준 등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학생들이 모여 창업한 후 대학생들을 지지기반으로 성장했다.
![[100대 사건_054] 인맥 기반 커뮤니티서비스 등장 <2000년 9월>](https://img.etnews.com/cms/uploadfiles/afieldfile/2012/09/11/317335_20120911180252_759_0001.jpg)
◇싸이월드의 시작=싸이월드는 1999년 8월 한국과학기술원 테크노경영대학원 내 전자상거래 동아리 `EC(일렉트로닉 커머스)클럽` 회원들을 주축으로 만들어졌다. 동아리 회원들이 모여 논문 주제를 논의하던 중 인맥 구축을 중심으로 하는 사이트 아이디어를 얻어낸 것.
당시 창업 동지는 총 5명이었고, 이동형씨가 그해 12월부터 대표를 맡으면서 싸이월드를 총괄하게 됐다. 이동형 대표는 2000년 5월 라이코스코리아로 법인을 설립했다. 정부는 `IT강국 코리아`라는 비전을 내놓고 IMF를 창업으로 극복하겠다고 발표했다. 초고속망 인터넷도 전국적으로 확충했다. 이동형 대표는 정부의 지원을 직접 받지는 않고 창업투자회사에서 약 25억원을 투자받았다.
그후 싸이월드는 `사이좋은 사람들`이라는 슬로건을 내걸며 2000년 9월 서비스를 시작했다. 개인형 커뮤니티 미니홈피는 사용자들이 `미니홈피` 공간에서 오프라인 지인과 소통하고 개인적인 정보를 공유하는 새로운 개념의 인터넷 서비스다. 복잡한 웹 저작도구 없이 개인 홈페이지를 꾸밀 수 있도록 설계돼 쉽게 접근이 가능했다. 네티즌은 사진, 동영상, 게시물 등 자신의 콘텐츠를 쉽게 업데이트하고 친구들과 공유했다. 또 미니룸, 미니미, 스킨 등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해 대한민국 국민의 절반인 2600만이 사용하는 대표적인 1인 미디어 서비스가 되었다.
미니홈피의 성공에도 그늘은 존재했다. 싸이월드가 미니홈피를 내놓자 2001년 12월에 프리챌이 미니홈피와 비슷한 `마이 홈피`를 내놓았다. 2002년 1월 30일 싸이월드는 가처분 신청을 냈고 두 회사는 6개월간 소송을 이어갔다. 2002년 5월 법원이 소송을 기각하면서, 싸이월드가 졌다. 그러나 이후 프리챌이 유료화 서비스로 전환하면서 가입자 대부분이 무료인 싸이월드로 몰려왔다. `프리챌은 유료, 싸이월드는 무료`라는 공식을 만든 덕분에 미니홈피는 더 인기를 끌 수 있었다. 이후 2003년, 싸이월드는 SK커뮤니케이션즈와 합병했다.
![싸이월드 미니홈피 메인 화면](https://img.etnews.com/cms/uploadfiles/afieldfile/2012/09/13/54-1.jpg)
◇일촌, 파도타기, 도토리=싸이월드는 사이버상에서 `일촌`이라는 개념 설정이 가능하고 사회적, 개인적 인맥을 관리할 수 있다는 소셜네트워크 세상의 인식을 확산시켰다. 커뮤니티 서비스의 트렌드 변화도 성장에 한몫을 했다. 클럽 서비스와 같은 그룹 중심 커뮤니티에서 미니홈피와 같은 개인 중심의 미디어로 서비스의 무게중심이 변화하는 시점을 잘 포착한 것이다. 1인 미디어로서 이성보다 감성을, 구경보다 참여를, 독자적 홈페이지 운영보다는 미니홈피 네트워킹 관계형성을 서비스화해 제공한 것이 주효했다고 보고 있다.
파도타기는 일촌 미니홈피를 차례로 방문해 인맥을 넓혀가는 것을 말한다. 일촌의 미니홈피를 순방하는 `일촌 파도타기`, 클럽 회원들의 미니홈피를 순방하는 `클럽 파도타기`가 있다. 또 불특정 미니홈피를 우연히 방문하도록 유도하는 `랜덤 미니홈피가기` 버튼을 클릭해 전혀 모르는 사람의 미니홈피를 구경 가는 것을 `랜덤놀이`라고 부른다. 회원 간 원활한 네트워킹을 유도하는 다양한 장치가 싸이월드 미니홈피의 가장 큰 특징이다.
싸이월드의 디지털 아이템인 `도토리`는 전 세계적으로 성공한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로 주목 받았다. 특히 디지털아이템인 도토리는 `도토리 좀 줘`라고 `조르기`를 하는 사람이 늘어날 정도로 자신의 미니홈피를 꾸밀 수 있는 사이버 화폐, 도토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다른 이의 미니홈피를 돌아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사진이나 게시물을 발견하면 `스크랩` 버튼을 눌러 내 미니홈피로 퍼올 수 있는 기능도 싸이월드의 인기를 도왔다.
싸이월드 미니홈피는 기존 오프라인 인맥을 옮겨오면서 온라인에서 자신의 프로필과 데이터를 저장하는 역할을 해냈지만 폐쇄적 형태로 운영됐다. 결국 타 사이트와 연계를 원천적으로 봉쇄한 운영정책이 콘텐츠 플랫폼으로 전환을 가로막았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 스마트폰에 기반을 둔 외국산 SNS에 밀렸다.
2011년 7월 회원 3500만명 개인정보가 유출된 `네이트·싸이월드 해킹` 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1800만 회원 정보가 유출된 2008년 옥션 해킹 사건의 두 배에 가까운 수다. 네이트와 싸이월드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국민 대다수가 사용하는 사이트인데다 사적인 콘텐츠가 많아 개인정보 유출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트위터·페이스북 열풍=다소 폐쇄적이었고 소통에 제한이 많은 미니홈피를 뛰어넘은 게 바로 트위터와 페이스북이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로 불리는 새로운 소통 채널은 커뮤니케이션 혁명으로 불리며 스마트한 세상을 앞당겼다. SNS는 PC 중심에서 휴대폰·스마트패드 나아가 안방의 TV까지 영역을 넓히면서 소통의 역사를 다시 쓰는 상황이다.
2005년 2월 설립해 12월 서비스를 시작한 유튜브는 하루 시청자가 20억명을 넘어섰다. 2006년 9월 서비스를 시작한 페이스북은 5년 만에 가입자가 6억명을 돌파했다. 페이스북에 비해 불과 석 달 앞선 2006년 9월 세상에 나온 트위터는 `140자`라는 짧은 메시지 하나로 소셜 미디어라는 뉴미디어 시장을 개척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모르고는 스마트한 삶을 이야기할 수 없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들 미디어는 유무선 통신망과 결합해 언제 어디서나 콘텐츠를 만들고 가공할 수 있는 새로운 서비스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인터넷 기반에서 휴대폰·TV·자동차 등에도 막힘없는 통신이 가능해지면서 영향력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있다. 거기다 4세대 통신 등 초고속 무선 통신망에 힘입어 파죽지세로 기존 올드 미디어 영역을 대체해 가고 있다.
[표] 싸이월드 회원 증가 추이
◆ 이동형 싸이월드 설립자(현 런파이프 대표)
“논문을 출력해서 책으로 12권 정도를 만들어 돌려가며 공부했습니다. 왜 사람들이 모여서 대화하려고 하는지, 커뮤니티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려는 시도였죠.”
이동형 싸이월드 설립자는 초창기 싸이월드를 만들 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오합지졸이었지만, 이렇게 3년 하고 나니 팀워크도 좋아지고 커뮤니티 이해도도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싸이월드는 실명제 인맥 기반의 가상 사회, 신뢰 기반의 정보 공유를 컨셉트로 공유와 소통을 가능케 하는 1인 미디어 서비스다. 이렇게 거듭날 수 있었던 이유는 주말에도 쉬지 않고 공부한 이동형 설립자의 숨은 노력 덕분이다.
하지만 싸이월드는 `글로벌화`에 실패했다. 이 전 대표는 “2005~2008년 해외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잘 되지 않았다”며 그 이유를 두 가지로 꼽았다. 그는 “첫째는 사업 주체의 능력 부족이고, 두 번째는 중국, 일본, 대만 싸이월드를 독립 서비스로 만들어 한국 싸이월드와 연동이 안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대표는 “국가적으로 장벽이 있다고 판단해 각각 서비스를 분리해놓은 것이 가장 큰 패착”이었다며 “언어만 바꿔서 확장시켰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싸이월드는 글로벌 서비스로 도약하지 못하면서 외산 SNS가 국내에 도입되자 이용자가 이탈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커뮤니티 서비스를 개방과 참여, 관계 중심으로 새롭게 설계한 시스템이다. 웹 2.0 정신을 잘 반영한 서비스인데 우리는 먼저 시도한 커뮤니티 서비스를 이러한 개념으로 발전시키지 못한 것이다.
이 전 대표는 “SK컴즈가 싸이월드를 버리고 다른 혁신적인 서비스를 했어야 한다”며 “싸이월드라는 본질을 버리기 어렵기 때문에 페이스북과 비슷하게 변화시키는 것은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하고, 페이스북도 5년 후에는 중요한 서비스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싸이월드가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은 적지 않다. 싸이월드의 중독성 강한 재미를 친근하게 표현한 `싸이질`이란 용어는 한때 큰 유행이었다. 이 전 대표는 “정치인이나 유명인들도 홈피를 갖게 되면서 일반인과 소통채널이 됐다”며 “우리나라 사람들이 페북, 트위터에 쉽게 적응하는 것도 미니홈피 학습으로 사용법이 진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싸이월드는 `도토리`로 비즈니스 수익 모델에도 성공했다. 음악 서비스 유료화도 성공했다. 싸이월드 뮤직은 2010년에 6월 누적 판매량 4억5000만곡을 돌파했으며 현재까지 5억5000만곡에 육박하는 판매고를 올렸다. 싸이월드의 배경음악 서비스는 불법 다운로드가 판치는 디지털음원시장을 정상화해 저작권을 보호하는 새로운 시장을 성장시켰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용자 이탈로 콘텐츠 매출은 꾸준히 줄고 있다. SK커뮤니케이션즈 연간 콘텐츠 매출 추이는 2010년 1086억원에서 2011년 921억원으로 줄었다.
그는 “SNS 형태는 변화하지만 커뮤니티 서비스의 수익모델 근거는 사람들의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표는 “스마트폰을 잘 응용한 서비스가 계속 나올 것”이라며 인터넷의 미래전망을 말했다.
송혜영기자 hybrid@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