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9·15 순환정전을 기억하자

[ET칼럼]9·15 순환정전을 기억하자

“이제 한숨 돌렸습니다. 올해는 비 오는 날도 많아서 그런지 여느 해와 달리 서늘해서 여름철 전력피크를 잘 넘긴 것 같습니다. 이제 여름내 풀가동한 발전설비를 계획정비해 다가올 겨울철 피크를 대비할 계획입니다.”

작년 이맘때 전력업계 관계자가 한 말이다. 그랬다. 여름철 폭염을 걱정했는데 다행히 비가 많이 내려 이렇다 할 비상사태 없이 무사히 넘겼다. 평소대로 다가올 겨울철 피크에 대비해 발전설비 점검에 들어갔다. 그런데 웬걸. 추석연휴 끝부터 기온이 상승하기 시작하더니 9월 15일에 일이 터졌다. 한국전력과 전력거래소는 전력예비율이 손쓸 새도 없이 떨어지자 최후의 수단으로 순환정전을 실시했다. 결과만 놓고 보면 당시 순환정전 결정은 대한민국을 살렸다. 만약 지식경제부에 보고하고 지시를 기다렸다가 조치했으면 대한민국은 영락없이 블랙아웃을 맛봤을 것이다.

9·15 순환정전의 후폭풍은 메가톤급이었다. 순환정전 책임을 물어 당시 전력거래소 이사장이 해임된 것은 물론이고 해당 업무 담당자들이 줄줄이 징계를 당했다. 지경부는 더 했다. 장관이 스스로 물러났고 실·국장과 실무를 담당한 과장까지 인사 불이익을 받았다. 대한민국에 전기가 보급된 이래 처음 있었던 순환정전이긴 했지만 지나친 처사였다는 지적이 있었다. 전력 전문가들은 당시 상황을 두고 적절한 대응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순환정전으로 인한 피해가 있었지만 자칫 머뭇거리다가 더 큰 재앙을 초래할 뻔했다는 것이다. 억울한 심정도 있지만 이미 지난 일이다.

어떻게 보면 9·15 순환정전은 전기를 물 쓰듯 쓰는 대한민국에 처방한 예방주사였다. 덕분에 전국 곳곳에서 에너지절약을 실천했고 당장 찾아온 겨울과 여름철 전력피크를 무사히 넘겼다.

이제 이틀 후면 9·15 순환정전 1주년이다. 당시 문제가 된 수요예측은 어느 정도 해소됐지만 전력공급능력은 여전히 불안 요소다. 원전과 석탄화력발전소가 추가 건설되고 있어서 2014년이면 당장 급한 불은 끌 수 있다. 하지만 제조업을 근간으로 한 우리나라의 전력사용 증가율은 만만치 않다. 앞으로도 전력사용량은 더 늘어날 것이고 머지않아 전력공급 부족이 문제로 떠오를 것이다. 긴장의 끈을 놓으면 9·15 순환정전은 언제든지 다시 찾아온다. 산업계도 전력 사용을 줄일 수 있도록 설비를 효율화해야 할 필요가 있고 일반 국민도 에너지절약이 몸에 배어 있어야 한다.

정부도 제 할 일을 해야 한다. 연말 제6차 전력수급계획과 제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수립할 때 좀 더 전향적이고 발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가까운 나라 일본은 지난해 동일본대지진을 겪으면서 전체 원전 54기 중 52기를 가동 중단했음에도 올여름을 거뜬하게 보냈다. 거기엔 이유가 있다. 단순히 일본 국민이 에너지를 절약했기 때문만이 아님을 정부는 알아야 한다.

주문정 논설위원 mj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