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컴퓨팅 패러다임이 10년 주기로 변하고 있다. 2000년 이전인 PC 시대엔 마이크로소프트가 강자였다. 인터넷 시대로 넘어오면서 구글이 득세했다. 서비스 이용환경이 PC에 설치된 패키지에서 인터넷 기반으로 바뀌며 일어난 일이다.
최근엔 애플이 사용자 감성과 앱을 무기로 아이폰, 아이튠tm, 아이패드, 아이클라우드 등을 내놓으며 다시 비즈니스 생태계를 바꿔 놨다. 애플의 대항마 삼성전자 갤럭시 시리즈도 올해 말 플렉시블 단말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구글은 올해 초 안경형 단말을 소개했다.
국내외 연구진은 접을 수 있거나 투명한 단말 등 미래 폰 개발에 한창이다. 전문가들은 향후 5~10년 내 단말을 들고 다니지 않고 주변 장치와 연동해 손쉽게 통신하는 `인비저블 폰(Invisible Phone)`시대가 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올해로 창간 30주년을 맞은 전자신문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연구진 20여 명과 공동으로 TF를 구성하고 미래 이동통신 단말 컴퓨팅의 새 패러다임으로 예상되는 `인비저블 폰` 개념과 기술적인 해결방안, 향후 추진 과제 등에 대해 4회에 걸쳐 심층 분석한다.
#사례 1.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는 미래 통신의 형태를 잘 구현하고 있다. 주인공이 아무 곳에서나 통신망을 펼쳐놓고 전화하는 동작 기반 인터페이스를 선보였다. 주인공이 지하철역 통로를 지날 때는, 광고 디스플레이가 알아서 그에 맞는 여름 휴양지를 찾아 보여준다.
#사례 2. 최근 개봉한 `토탈리콜`에는 전화기가 심어져 있는 손바닥으로 통신하는 장면이 나온다. 전화가 오면 손바닥이 화면이 되고 손바닥을 귀에 대고 통화한다. 주변에 있는 투명 스크린에 손을 대면 전화가 스크린으로 연결되면서 영상으로 통화한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나 `토탈리콜`에 나오는 기술 일부는 현재도 당장 구현이 가능하다. 사용자 주변 환경에 설치된 다양한 센서와 출력 장치를 통해 사용자의 입력 의도를 해석하고 관련 정보를 가공해 처리하면 된다.
이동통신 단말이 환경에 내재하는 `보이지 않는` 장치와 지능을 통해 사용자로 하여금 `보이지 않는` 서비스를 누리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통신단말이 몸속으로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변 사물은 모두 통신 수단이 된다.
◇조만간 도래할 IT환경 분석해보니
가까운 미래 IT환경 키워드로 전문가들은 이동성, 지능화, 내재화 세 가지를 꼽았다. 이를 통해 환경 지능화가 실현될 것으로 내다봤다.
생활 속 다양한 정보기기(스마트폰, 스마트TV, 스마트 가전 등)나 무인자동차, 사물(성장하는 인공화분 등)이 보다 지능화되고 이들이 다양한 센서, 만물지능 통신망, 클라우드 컴퓨팅 자원들과 융합되면서 생활환경이 고도의 지능 환경으로 바뀔 것으로 예측했다.
스마트폰도 마찬가지다. 단말 자체는 더 작아지고 얇아지고 가벼워질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 플렉시블 단말(Flexible Device), 접는 단말(Foldable Device), 투명 단말(Transparent Device) 등 새로운 단말 개발이 활발하다.
근거리 사물통신이 활성화될 것이란 예측도 제기됐다. 현재 NFC(Near Field Communication)를 중심으로 다양한 서비스가 제시됐다. 향후 WPAN(Wireless Personal Area Network) 등과 같은 근거리 통신을 이용한 주변 기기와의 연결을 통한 개인 맞춤형 서비스가 확대될 것으로 예측했다.
김현 ETRI 지능형에이전트연구팀 책임연구원은 “최근 모바일 단말을 이용해 현실계와 가상계를 연결하는 증강현실이 실용화 단계에 진입했다”며 “애플의 `시리`를 필두로 단말자체가 갈수록 지능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 소통수단 `인비저블 폰`
가까운 미래에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디지털 세계뿐만 아니라 실세계 물리공간까지 연결한 소통수단 개념이 제시될 것이라는 분석이 제시됐다.
김채규 융합기술연구부문 소장은 “인비저블 폰은 사람 간 소통, 디지털 세계와 소통, 물리공간과 소통을 위한 새로운 미래 단말 컴퓨팅 패러다임을 제시할 것”이라며 “현재 들고 다니는 단말 자체가 미래 패션이 돼 사라져 버릴 것”으로 내다봤다.
무거운 단말을 일일이 들고다닐 일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안경이나 시계, 목걸이 등에 단말 기능이 접목된다는 의미다. 최소한의 연결 수단으로서의 단말은 작아지고 사라져 버린 것 같지만 성능은 더욱 실감적이고 감성적인 상호작용을 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인비저블 폰이 구현되면 사용자 주변에 있는 가장 좋은 기기를 활용해 영상전화를 할 수도 있다. 주변에 적절한 기기가 없다면 전화로 가용할 수 있는 주변 물체라도 이용해 전화할 수 있다.
전화할 때도 음성·영상통화뿐만 아니라 내가 느끼는 감성을 사람에게 물리적으로 직접 전달할 수도 있다. 내가 상대방 기기를 원격으로 제어하면서 상대방의 공간 안에 나의 현실적 존재감을 극대화할 수도 있다.
일반 물체에 정보를 넣고 그 정보를 활용할 수 있다면, 수많은 응용이 가능해진다. 책상 위에 악보를 올려놓으면 그 악보를 인식해 책상 위에 가상의 피아노를 디스플레이할 수 있다. 이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면 실시간으로 연주하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연습한 연주 내용은 실제 악보의 책갈피로 저장됐다 나중에 다시 들을 수도 있다. 지금까지의 앱 개념과는 판이한 새로운 서비스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얘기다.
◇“지금이 IT강국 재도약 위한 절호 기회”
김흥남 ETRI 원장은 “지금 대한민국이 IT 강국으로 재도약할 최고의 기회”라며 “국내 IT기업들은 국제사회에서 위상이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에서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전환되는 시점에 와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1969년 세계 최초로 인터넷을 연결한 미국에 이어 두 번째 인터넷 개통국이다. 전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IT 인프라도 구축해 놨다. 1994년부터 추진해온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사업 덕분이다.
반도체, 휴대폰, 가전 분야 등 IT제조업 분야에서도 치열한 글로벌 경제 환경을 이겨내고 세계 속의 강자로 부상했다.
무작정 1등을 빠르게 쫓아가기보다는 스스로가 그 분야에서 최고를 만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에 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김 원장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이번 삼성과 애플의 특허분쟁”이라며 “제품, 기술, 시장 사이클이 갈수록 짧아지는 오늘날 우리나라 IT가 재도약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우리 스스로 미래 IT 패러다임을 예측하고 준비하고 이를 기반으로 혁신을 만들어 가는 것 밖에는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