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상돈의 인사이트]왼손엔 신문, 오른손엔 가위

[주상돈의 인사이트]왼손엔 신문, 오른손엔 가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미래 정보기술(IT)을 연구하는 하원규 박사. 그는 항상 가방 두 개를 들고 다닌다. 한 가방엔 연구 자료를 담고, 보조가방엔 신문을 넣는다. 하 박사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신문을 네 종류 이상 읽어온 신문광이다. 지금은 집에서 신문 여덟 개를 정기 구독한다. 하루 종일 보조가방에 신문을 넣고 다니며 읽는다. 가방 속 정중앙에는 언제나 전자신문이 들어 있다. 퇴근 후엔 가방 속 전자신문을 꺼내 스크랩한다. 한밤중에 신문을 자르는 일은 초등학교 3학년 시절부터 50년 이상 습관이 됐다. 신문과 가위를 손에 들면 기자들의 거친 숨소리와 세상의 모든 희로애락이 함께 몰려온다. 하 박사는 “전자신문은 연구자로서의 영혼을 지켜주는 소중한 동반자”라며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에도 왼손엔 전자신문, 오른손엔 가위를 쥐어 달라고 가족들에게 부탁했다”고 말한다.

#서울시 종로구 배화여대 컴퓨터정보학과 `유비쿼터스컴퓨팅` 수업 시간. 교실 한가운데 전자신문을 펼쳐 놓고 교수와 학생이 열띤 토론을 펼친다. 대학 정규 과목이지만 수업 전체를 전자신문 기사로 진행한다. 이론 중심에서 탈피해 최신 IT 트렌드를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에 장영현 교수는 전자신문을 정규 수업 교재로 채택했다. 학교 협조를 받아 1년 동안 수강생들의 집으로 전자신문을 배달해준다. 처음엔 당황하던 학생들도 지금은 매우 만족스러워 한다. 장 교수는 “학생들이 전자신문에서 아이디어를 찾아 그들만의 상상의 날개를 펼치는 등 수업 효과를 제대로 봤다”며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을 따라잡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신문을 만드는 사람들보다 더 전자신문을 사랑하는 독자들이다. 세상이 바뀌었다. 종이 신문을 읽는 독자가 확실히 줄었다. 사람들은 이제 신문보다 인터넷과 모바일로 뉴스를 즐긴다. 신문사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다.

1970년대 `워터게이트` 특종으로 퓰리처상을 받은 밥 우드워드. 그리고 지난 23년간 워싱턴포스트 편집국장을 지낸 벤 브래들리. 언론사에 길이 남을 두 스타 기자는 얼마 전 백발이 되어 아이패드용 앱 광고에 등장했다.

50년 된 `타자기`로 혼자 책상에 앉아 기사를 쓰는 밥 우드워드. 주변 젊은 기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조그만 패드를 보며 웃고 즐긴다.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은 그는 사무실을 가로질러 편집장 벤 브래들리의 방을 찾아간다. 아이패드로 자신이 쓴 기사를 보는 방법을 묻는 우드워드에게 아흔 살의 브래들리가 사용법을 알려준다. 서로를 바라보며 신기한 듯 뿌듯해 하는 두 백전노장. 그들도 이젠 스마트패드로 기사를 본다.

기술은 발전했고 분명 새로운 인터넷·모바일 시대가 왔다. 그럼에도 우리 독자들은 매일 아침 현관 앞에 놓인 전자신문을 기다린다. 창간 시절부터 단 하루도 빠짐없이 전자신문을 읽고 스크랩한 기업인. 전자신문을 연구자로서의 영혼을 지켜주는 동반자로 여기는 연구원. 미래 로봇공학자를 꿈꾸며 전자신문에 밑줄 긋고 별표 쳐가며 읽는 중학생. 현장감 넘치는 수업을 위해 전자신문을 교재로 채택한 교수.

지난 30년간 뜨거운 사랑과 애정을 보내준 소중한 독자들이다. 전자신문의 뿌리며 생명선이다. 이런 감동적인 독자들이 매일 아침 전자신문을 기다린다. 우리가 지난 1982년 창간 후 지금까지 전자신문을 발행하고 이 순간에도 바쁘게 뛰며 신문을 만드는 이유다.

주상돈 벤처경제총괄 부국장 sd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