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IT 경쟁력의 초석

일본에서 온라인게임 사업을 하는 한국인 기업가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한국은 자타공인 온라인게임 강자다. 뒤늦게 시작한 중국 기업이 양적으로 큰 성장을 이뤘지만, 여전히 질적으로나 창의성 측면에서 한국 게임은 인정받는다. 특히 일본에서 한국 기업 인지도는 상당히 높다.

이유가 궁금했다. 막연히 시나리오나 게임 창의력, 제작 기술 등이 경쟁력일 것이라고 기대했으나 그의 답변은 예상 밖이었다. 게임 서비스 특성상 사용자 접속이 갑자기 몰리거나 다양한 행동을 구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그런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얼마나 안정적으로 서비스를 유지하느냐가 고객 신뢰를 얻는 기본 요소라는 것이다. 한국 기업 경쟁력은 바로 그러한 서비스 운용 기술과 경험이었다.

페이스북이 초창기에 고민한 것은 수익 모델도, 투자를 받는 것도 아니었다. 사용자가 늘어나 트래픽이 급증해도 성능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사람들이 흥미를 느껴서 자발적으로 들어오는 무료 서비스다. 서비스에 접속했는데 한참 있다가 화면이 뜬다거나, 친구와 한창 채팅하는데 서비스가 끊기면 바로 떠난다. 회원이 늘고 트래픽이 증가하는 속도도 순식간이지만 회원이 빠져나가는 것도 순식간이다.

페이스북의 최고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는 SNS의 그런 특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시스템을 견고하게 만드는데 주력했다. 페이스북이 반면교사로 삼았던 서비스는 프렌드스터(Friendster)였다. 프렌드스터의 창업자 조나단 아브람스는 SNS 전도사였다. 하지만 잘 나가던 프렌드스터는 사용자가 늘어나자 성능이 떨어졌고 서비스를 신속하게 안정화하지 못했다. 시스템이 불안정하니 사용자는 다른 서비스로 떠나갔다.

저커버그는 서비스 확산을 서두르지 않았다. 먼저 자신이 다니는 하버드대에서 널리 사용케 했다. 충분히 기술 검증이 이뤄진 상태에서 밖으로 눈을 돌렸다. 각 대학이 페이스북을 유치하려고 아우성이었지만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일단 대학 커뮤니티에서 충성도 높은 고객을 마련한 페이스북은 일반 사회로 서비스를 확대했다. 페이스북 내부에서나 투자가들에게서 왜 압력이 없었겠는가. 그러나 그는 인내심을 갖고 임했다. 무리하게 사업을 전개하기보다 고객이 진정으로 매력을 느끼고 충성할 수 있는 서비스를 개발하는 게 우선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구글이나 애플·아마존 같은 세계 유수의 기업도 서비스를 안정적이고 신뢰감 있게 유지하는 시스템과 네트워크, 보안 전문가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경험이 풍부한 시스템 기술자를 얼마나 보유했느냐가 사업 성패의 핵심인 이유이다.

불행히도 한국에선 시스템 운용이 젊을 때 경험 삼아 하는 궂은 일로 치부된다. 앞으로 IT서비스는 사업 발굴과 성장을 도모하고, 지능적인 시스템으로 부가가치를 높이는 열쇠가 될 것이 자명하다. 무엇보다 안정적인 IT인프라를 뒷받침하는 것은 실질적인 경험을 갖춘 기술자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또한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혁신적인 기술이 탄생한다. 실리콘밸리의 벤처 창업자들은 시스템과 네트워크를 직접 다루는데 아주 능숙하다. 20∼30년 경력의 시스템 기술자가 제품 설치와 시연을 직접 하는 모습도 자연스럽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책상보다 현장 경험에서 잉태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때문에 국가나 기업은 인력 포트폴리오 측면에서 시스템 인력 저변을 확대하고, 질적으로 양성하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 시스템·네트워크·보안 전문가는 전면에 나서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IT산업을 뒷받침하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존재다. 고급 일자리가 많이 창출될 수 있으며 경험이 축적될수록 가치가 빛을 발하는 분야이기도 하다. 그들의 실질적인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IT 경쟁력의 초석이다.

김홍선 안랩 대표 phil_kim@ahnla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