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등은 슬프다.
몇 해 전 유행한 개그콘서트 코너에서 한 개그맨이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절규(?)했다. 경쟁이 만연한 사회에서 이른바 `루저(패자)`의 설움을 담은 대사에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요즘은 줄었지만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고도 펑펑 울며 고개 숙이는 선수들도 이런 생각일 것이다. 따지고 보면 세계 수십억 인구 중에 두 번째인데 뭐가 그리 서러운지 눈물을 멈추지 못한다.
2등은 기쁘다.
미국 빌보드에서 2주 연속 2위를 차지한 싸이는 서울 한복판에 8만명을 모아놓고 춤판을 벌였다. 2위라고 슬퍼하는 기색은 없었다. 최선을 다한 뒤 얻은 기대 이상 성과여서 그런지 2위만으로도 가슴이 벅찬 듯했다.
정치판은 어떤가. 이곳은 확연하게 `슬픈 2등` 쪽이다. 2등을 싫어하는 것으로 치면 정치판을 따라올 곳이 없다.
대통령을 뽑든 국회의원을 뽑든 2등은 의미가 없다. 선거에 은메달, 동메달은 없다. 오직 당선자와 낙선자 둘뿐이다.
1등 아니면 아무 소용없다고 생각하니 자연스레 경쟁이 심해진다. 처음에는 앞만 보고 열심히 달리는 척하다가 슬슬 옆을 보기 시작한다. 온전히 자신 힘으로 앞서 나가려는 노력보다 경쟁자 발목 잡기에 치중한다. 상대 발목을 잡으려면 자신도 속도를 늦춰야 하지만 일단 경쟁자를 넘어뜨리면 앞서 나가기 쉽기 때문이다.
12월 대선을 석 달가량 앞두고 네거티브 공세가 고개를 들었다. 검증이라는 명목 아래 집요하게 상대 결점을 찾는다. 1등만 기억하는 세상에서 2등이 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계속되는, 근거 없는 의혹 제기는 불편하게 느껴진다. 누구처럼 `기쁜 2등`이 되라고 할 수 없지만 적어도 `부끄러운 1등`을 해선 안 된다.
이호준 통신방송산업부 차장 newleve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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