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민폐`사업자 `VAN`

[기자수첩]`민폐`사업자 `VAN`

지난 주말 강원도 원주 한솔오크밸리에서 열린 여신금융협회 출입기자단 워크숍. 세미나가 끝난 뒤 열린 뒤풀이 자리의 화제는 지난 7월 전격 발표된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체계 개편`이었다.

신용카드 시스템이 국내 시장에 도입된 뒤 35년간 모두가 문제점을 지적했지만 누구도 손대지 못할 만큼 카드 수수료는 `뜨거운 감자`였다. 양대 금융 브레인으로 꼽히는 한국개발연구원(KDI)과 금융연구원이 적정 수수료 도출안을 놓고 자존심을 건 신경전을 벌인 것도, 이해 당사자들이 정치권을 앞세워 막후 로비전을 벌인 것도 모두 이 때문이다.

이날 공개된 개편 작업의 후일담 중 백미는 `부가통신망(VAN) 사업자 수수료` 문제였다. 이두형 여신금융협회장은 “당초 카드 수수료 체계 개편 작업에 VAN 수수료도 들어가 있었다”며 “하지만 VAN 문제는 신용카드 이상으로 복잡하고, 무엇보다 벼랑 끝에 몰린 해당 사업 종사자들의 반발 수위가 워낙 높아,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도저히 손댈 수가 없었다”며 애석해했다.

12개 대형 VAN사 외에 지방 중소 VAN 대리점까지 합하면 종사자 수는 족히 8만명에 이른다. 지난해 신용카드 이용 건수 총 56억건. 10년 새 네 배 이상 급증했다. 그럼 건당 수수료를 받는 이들 8만 사업자의 주머니도 그만큼 두둑해졌을까. 아니다. 그 돈을 리베이트 등에 허비한 VAN사 역시 쪼들리기는 마찬가지다. 수수료 외에 별다른 수익모델이 없는 이들 대부분은 여전히 영세 사업자다.

지난 1987년 VAN사의 등장은 멋졌다. 사용자가 카드를 쓸 때마다 `불량거래 정지자 명단` 책자를 들춰보며 승인 여부를 가려야 했던 가맹점과 카드사는 불량카드 유무 확인은 물론이고 카드 회원의 신용 조회와 승인까지 신속히 처리할 수 있게 됐다. 모두 VAN사 덕이었다.

하지만 이후 20여년간 VAN사는 급변하는 금융 정보기술(IT) 환경에 적응하며 신규사업 발굴 등에 나서기는커녕, 건당 수수료에 안주하며 리베이트로 생명을 연장하는 손쉬운 길을 택했다.

지금이라도 VAN 사업자들은 진화한 IT를 인정하고 가맹점과 카드사 간 직통 결제망 구축 등 새 패러다임에 동참해야 한다. 그 안에서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야 한다. 그것이 `민폐 캐릭터`를 벗는 유일한 길이다.

류경동 경제금융부 ninan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