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정치는 정치로, 경제는 경제로

[ET칼럼]정치는 정치로, 경제는 경제로

지난 8월 하순 업무차 일본에 다녀온 일이 있다. 일본 매체와 협력을 타진하기 위해서였다. 시점이 공교로웠다.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한 지 정확히 일주일 되던 날이었다. 한일 양국의 날선 공방이 이어졌다. 급기야 일본 측은 한일 통화스와프 중단 가능성을 언급했다. 지금 와서 보면 한낱 기우에 불과했지만 당시엔 `협력이 잘될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일본 현지에서 기업체를 운영하는 한 지인은 “(대통령이)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해외에 나와 있는 기업인에게까지 민폐를 끼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푸념했다. 독도에 간 것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왜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해서 분위기를 더 악화시키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내용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일본에선 한류(韓流)가 한류(寒流)로 급랭했다. 공연이나 드라마 계약이 줄줄이 취소됐다. 한인 식당가는 그 많던 손님이 뚝 끊어졌다. 극우단체가 연일 시위를 하고 한인 식당을 드나드는 사람에게 해코지한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지난 9일엔 기획재정부와 일본 재무성이 한일 통화스와프 계약 규모를 일시적으로 확대하기로 한 조치를 예정대로 만기일인 10월 31일 종료하기로 했다. 양국 정부는 순수한 경제적 결정이라고 강조했지만 뒷맛은 개운하지 않다. 독도 문제가 근저에 깔려 있을 것이라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애초 포문을 연 청와대도 그렇지만 그것을 서툴게 받아친 일본 정부도 문제다. 정치 문제를 경제적인 우위로 누르려는 얄팍한 꼼수가 건너지 못할 강을 건너게 한 셈이다. 과거 중국이 영토분쟁 끝에 꺼내든 `희토류 카드`에 당한 경험에서 생각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신사적이지 못한 대처였다는 시각이 일본 사회 일각에서도 나온다고 한다. 한 번 내뱉은 말을 거둬들이기는 쉽지 않다. 그럴싸한 명분을 만들거나 한쪽이 체면을 구긴다면 모를까 불가능에 가깝다. 통화스와프 연장 문제도 두 나라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파경에 이르렀다. 일본 정부가 “한국이 먼저 연장을 요청하지 않으면 중단하겠다”고 하는데, 한국이 자존심을 굽히고 덥석 손을 잡을 리 만무하다.

정부는 한일 통화스와프 연장이 중단됐지만 당장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없을 것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번 사건이 더 이상 경제 문제로 비화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대일 무역 규모는 지난해 기준으로 1100억달러에 육박한다. 이 가운데 700억달러어치를 우리가 사들이고 400억달러어치를 일본에 판매한다. 무역적자를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지만 일본은 없어서는 안 될 무역·사업 파트너기도 하다. 양국의 많은 기업이 직간접으로 협력 관계를 맺고 거래를 하고 있다. 경제 문제로 확산하면 두 나라는 공멸할 수 있다. 어찌됐든 정치 문제는 정치로 해결하고 경제 문제는 경제로 해결해야 한다.

주문정 논설위원 mj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