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될 것인가, 펭귄이 될 것인가, 들쥐가 될 것인가….`
요즘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정보통신기술(ICT) 거버넌스 개편`을 놓고 동물 논쟁이 한창이다. 미국 경제학자 포럴과 살로너의 저서 `말 펭귄 들쥐의 경제학`이 단초가 됐다. 이 책은 원래 세 동물을 비유해 ICT 표준화 현상을 설명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ICT 거버넌스 개편 모델과 딱 맞아떨어진다.
먼저 강력한 리더십을 따르는 들쥐 모델이다. 미국 통신사 AT&T처럼 시장에서 어떤 지배적 기업이 특정 기술을 선택하면 후발 기업도 따른다. 선도적 지위는 불확실성과 리스크는 있지만 시장을 주도하면 가장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애플과 구글이 좋은 사례다.
둘째, 서로 견제하는 말 모델이다. 서부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장면을 연상하면 된다. 말뚝이 없는 들판에서 야영할 때는 말들끼리 서로 묶어 놓고 잠을 잔다. 그러면 말들은 서로 견제하면서 야영지 인근에 머무른다. 지배적인 리더가 없는 체제에선 현 수준에서 기술 표준이 결정된다. 보수적이다.
셋째, 확신이 없는 펭귄 모델이다. 물속에 먼저 들어가 생선을 잡아먹고 싶지만 상어와 같은 천적이 있을까 두려워한다. 이 때문에 서로 상대방을 물속에 밀어 넣어 안전을 확인한 뒤 뛰어든다. 부가가치가 낮은 추종자(follower) 전략이다.
지난 5년간 MB정부의 ICT 거버넌스는 말과 펭귄에 비유된다. 전담부처 없이 다수 부처에 정책 기능을 분산하면서 말과 펭귄처럼 불확실성과 리스크를 회피했다. 반면에 시장을 선도하는 역동성은 현저히 떨어졌다. 최근 ICT 전담부처 신설안이 대체로 공감을 얻는 것도 이런 비판 때문이다.
대세를 이룬 ICT 전담부처 신설안도 굴절될 조짐을 보인다. ICT 전담부처와 과학기술부를 합치자는 일각의 제안 때문이다. ICT와 과학기술의 성격이 유사하고 기초와 응용기술 분야를 묶어 놓으면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논리다. 현실적으로는 지금 교과부에서 과기 분야만 따로 떼어내 하나의 부처를 만들기에는 공무원 수나 조직이 너무 작다는 고민도 있다.
문제는 `ICT+과기 부처` 안은 이질적인 두 조직이 존재하는 지금의 교과부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기 분야는 향후 10년 뒤를 내다보는 기초 기술 개발의 장기 정책이 필요하다. ICT는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대응해야 한다.
ICT 전담부처 신설 논의는 서로 견제하며 발목을 잡는 말과 펭귄의 단점을 극복하자는 반성에서 시작됐다. 그런데 `무늬만 전담부처`를 갖추고 그 속에서 다시 말들이 서로 견제하게 만들자니 아이러니다. 다시 시장을 직시하자.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아니면 몰락하는 승자 독식의 시대다. 말과 펭귄으로는 힘겨운 싸움이다.
장지영 통신방송산업부장 jyaj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