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대사관 우리정부에 “중국산 통신장비 논란 우려 전달"

중국이 우리나라에서 일고 있는 자국산 통신장비 보안 논란에 대한 우려를 우리 정부에 전달했다. 미국 하원 보고서로 촉발된 중·미 간 통상 분쟁이 우리나라까지 영향권을 넓힐지 주목됐다.

15일 관계기관에 따르면 장신썬 주한 중국대사는 지난주 박태호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과 만난 자리에서 “최근 통신 산업에서 미국이 부정확한 정보와 근거 없는 주장을 내세워 불공정한 견제를 시작했다”며 “한국에선 영향이 없길 바란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박 본부장은 이에 대해 “정상적인 사업이 피해를 보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취지의 답변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관계자는 “특정 이슈를 주제로 한 만남이 아니라 통상적인 미팅에서 최근 화제를 이야기한 것”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아직 한중 간 논쟁이나 이슈가 되지 않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공식 만찬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은 미국에 이어 한국에서도 통신장비의 보안문제가 부각될 조짐을 보이자 논란 확산을 막기 위해 사전 정지작업에 나섰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국에서도 이 문제가 쟁점이 되면 외교 문제로 비화될 수 있음을 미리 예고한 셈이라는 분석이다.

미 하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보안 문제가 있는 중국통신장비를 자국에 도입하면 안 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곧바로 중국 외교부과 상무부가 공식성명을 통해 “근거 없는 날조”라며 대응 수위를 높이는 등 양국 간 긴장이 높아졌다.

국정감사 현장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이슈로 부각될 조짐이다. 미 하원 보고서를 인용한 보도가 잇따랐으며, 최근 국군 기무사령부 대상 비공개 국감에서 중국 통신장비 도입을 놓고 의원들의 문제 제기가 쏟아졌다.

국내 진출한 중국 통신장비 업체들은 미 하원 보고서가 발표된 이후 한국 비즈니스에서도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측 업계 관계자는 “계약이 무기한 연기되거나 재검토에 들어가는 등 정상적인 활동에 장애가 많다”고 말했다.

중국 측 관계자는 이에 대해 “본국에서 공식입장이 나왔기 때문에 그 테두리 안에서 협조를 요청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화웨이, ZTE 등 중국계 통신장비 업체는 우리나라에서 활발한 사업을 펼친다. 이들 회사는 통신사와 공공기관 기간망에 장비를 공급한다.

2003년 한국에 진출한 화웨이는 주로 전송 분야에서 연간 600억원가량 매출을 올린다. 미 하원 보고서 배후로 지목된 시스코는 국내에서 백본 라우터 등 기간망 장비로 매년 4000억원 안팎 매출을 거둔다. 매출이나 공급 장비 레벨 면에서 아직 중국이 미국에 미치지 못한다.

중국 통신장비 업체는 글로벌 진출 초기 가격 경쟁력을 내세웠지만, 최근 품질까지 급격히 상승하면서 시스코 등 기존 독점적 사업자 지위를 위협하는 수준까지 치고 올라왔다. 미국 정부가 자국 내 중국 통신장비 진입을 막는 배경에 이 같은 성장세를 견제하려는 목적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논란을 계기로 국내 기간통신망 보안 점검 강화와 국산 장비 산업을 적극 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기간망 장비 중 국산은 전송 쪽 일부를 제외하곤 대부분 외산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통신업계의 한 관계자는 “남에게 기간 설비를 맡기는 상황에서 신뢰성 논란이 멈추길 바라는 것은 무리”라며 “이를 계기로 정부 차원에서 보완책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시소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