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출신으로 미국에서 대학을 나온 아난드와 시카 샤트파는 얼마 전 잘 나가던 페이스북 기반 소셜게임 회사 `페임 익스프레스`를 미국에서 인도로 옮겼다. 2000만명이 넘게 이용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면서 매년 25만달러의 세금을 냈지만 비자 연장이 거부됐기 때문이다.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호에서 폐쇄적인 이민자 정책이 미국의 창업 환경을 망쳐놓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에서 이민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인구의 23%에 불과하지만 이들은 포천 500대 기업의 40%를 창업한 주인공이다. 이민자가 미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10여년 전부터 이민 정책이 경직되기 시작했다. 1999년에는 10만명에게 발급되던 숙련 기술자에 대한 취업비자가 올해 6만5000명으로 줄었다. 1980년대 18개월이면 이민자가 영주권을 획득할 수 있었으나 지금은 10년이 넘게 걸린다.
그 결과, 미국 성장의 원동력이던 이민자 창업 열기도 식고 말았다. 카우프만재단 연구조사에 따르면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가운데 이민자가 세운 비율은 2005년 52%에서 올해 44%로 뚝 떨어졌다.
이코노미스트는 미국과 달리 이민자를 환영하는 국가들이 스타트업 창업에 활기를 띠고 있다면서 그 가운데 남미국가 칠레가 가장 돋보인다고 평가했다. 칠레는 이민자에게 야박한 미국의 약점을 파고들었다.
칠레 정부는 2010년부터 운영 중인 창업지원프로그램 `스타트업 칠레`를 운영 중이다. 스타트업 창업자에게 4만달러를 지원하고 1년짜리 비자도 내준다. 그랬더니 2년여 만에 37개국 900명의 기업가가 500개의 스타트업을 창업했다.
스타트업 칠레의 창업지원 담당관 니콜라스 셰아는 “스탠퍼드대학에서 공부했던 재능있는 사람이 비자가 없어 쫓겨나는 장면을 많이 봤다”면서 “이들을 칠레로 데려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스타트업 칠레는 내년 말까지 총 4000만달러를 투자해 1000개의 스타트업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칠레는 정기적으로 글로벌 미팅을 개최하면서 세계화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타트업 지원대상을 선발하기 위해 최근 개최한 글로벌 미팅에서는 세계 60개국 스타트업이 참가했다. `칠리콘 밸리(Chile+Silicon Valley)`라고 불릴 정도다. 이에 자극받은 이웃 나라 브라질은 올 연말 유사한 스타트업 진흥 프로그램을 출범한다.
해외에서 몰려든 창업가들은 칠레 창업정신을 일깨우는 데도 큰 공헌을 했다. 2010년과 올해 9월 사이 스타트업 칠레 소속 창업가들은 380회의 미팅을 주최하고 1000개가 넘는 워크숍과 컨퍼런스에 참여해 창업 노하우를 전수했다. 칠레가톨릭대학교는 스타트업 칠레 영향으로 교내에 이노베이션센터를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놀라운 점은 이 같은 성과가 칠레 수도 산티아고의 열악한 기업 환경 속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이다. 시장 규모는 브라질의 10분의 1 수준이고 변변한 벤처캐피털이 없다. 스타트업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도 마땅치 않다. 파산정책이 가혹해 한 번 실패하면 그걸로 끝이다.
칠레 벤처캐피털 아우러스의 호세 미구엘 무살렘은 “예전에는 스탠퍼드대를 나온 유능한 사람이나 창업을 하는 줄 알았다”면서 “그러나 이제는 칠레인들도 `나도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김용주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