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최근에서야 주목을 받는 학문이 있다. 바로 `유전경제학(genoeconomics)`이다.
유전학과 경제학을 융합하고자 하는 신생학문인데 이를 지지하는 경제학자 혹은 유전학자들은 한 국가의 유전적 다양성으로 그 국가의 경제적 성공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 프랑스 등지에서 자국민 일자리가 부족하니 타 인종을 나라 밖으로 추방시키자는 극단적인 국수주의 열풍이 불면서 힘을 얻고 있다. 이 학문을 차용하면 국민 경제의 부흥을 위해 `적정 수준의 강제이민`을 허용하는 등의 정책도 가능해진다. 인종주의를 부추길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인 것이다.
이런 논란을 일으킨 학자는 미국 브라운대학의 오데드 갈러와 윌리엄스칼리지의 쿠암룰 아시라프다. 이들은 세계 유수의 경제학 저널 중 하나인 아메리칸이코노믹리뷰에 107쪽 짜리 보고서를 실어 “145개 국가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국민의 유전적 다양성과 일인당 소득 간에는 강력한 연관성이 있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이들은 `고도의 유전적 다양성`을 보유한 국가는 `고도의 혁신`을 추구하는 사회가 된다며 인구 구성이 다양할수록 인지능력과 스타일의 스펙트럼이 넓어진다고 주장한다.
이와 반대로 유전적 다양성이 낮으면 혁신이나 개혁보다는 개인간 신뢰를 중시하는 사회가 되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경제성장의 걸림돌이 되며 생산적이지 않게 된다는 비판이다. 이들의 논문은 경제학자 및 생물학 전문가들의 검토를 받고 있다. 혹독한 검증을 받고 있는 셈이다.
때마침 10월호 네이처에는 이와 관련한 흥미로운 논란이 벌어져 주목을 끌었다. 하버드 의과대학의 데이비드 라이히 박사는 “갈러와 아시라프의 연구 결과가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금할 수 없다”며 “인종청소나 집단학살과 같은 용납될 수 없는 관행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오용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과학자들은 이들이 유전적 다양성에 대한 데이터를 마음대로 차용했다고 지적했다. 상이한 국가들 간의 유전적 다양성을 하나의 독립적인 데이터로 처리하는 실수를 범했다는 것. 예를 들어 동아시아 국가들이 공통적인 유전적 역사를 공유하고 있지만 이것이 같은 문화를 형성하는데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라이히 박사는 “마구잡이식 방법론과 통계학적 독립성이라는 잘못된 과정을 통해 문화현상에 대해서도 유전학적 잣대를 들이대는 오류를 범했다”고 말했다.
갈러는 과학자들이 논점을 잘못 짚었다고 응수했다. 그는 “과학자들이 쏟아내는 모든 비판은 우리의 연구에 대한 총체적 몰이해에 근거한다”며 “우리가 사용한 실증적 기법을 피상적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시라프는 네이처와 전화통화에서 “우리는 유전학이 경제학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게 아니라 문화나 역사, 생물학적 요인처럼 다뤘을 뿐”이라며 “경제와 연관되는 개념을 하나 더 만든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번 연구에 유전학적 데이터를 제공한 브라운 대학의 소히 라마찬드라 박사는 “이번 연구를 둘러싼 논란은 해석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이런 유전적 다양성에 관한 데이터를 경제학에 사용한 사람은 갈러와 아시라프가 처음이 아니다. 스폴라오 역시 국가 간의 유전적 다양성 차이를 갖고서 경제발전 수준의 차이를 예측할 수 있음을 발견한 바 있다. 그러나 스폴라오는 이 관련성을 인과관계라고 볼 수 없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 그는 “이런 상관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유전적 다양성이 아니라 문화다”라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유전경제학자들이 아직 엄밀한 방법론을 확립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의료 유전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지난 몇 년간 겪어왔던 문제점, 예컨데 표본 수의 부족에서 파생되는 문제점 같은 것들은 오늘날 유전경제학자들도 데이터를 분석할 때 똑같이 부딪히는 문제라는 것이다.
대니얼 벤차민 코넬대 행동경제학 박사는 “유전경제학이 결실을 맺으려면 반드시 과학이 필요하다”며 “과학자의 도움과 통찰력이 없다면 연구를 충실히 수행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아이슬란드인 2349명을 대상으로 `인간의 행복이나 소득과 같은 인자들의 유전적 연관성`을 연구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연관성이 있음을 발견했다. 하지만 나머지 3개의 인구집단에서는 이 연관성을 재연하지 못했다. 아직까지 미궁인 셈이다.
벤차민 박사는 사회과학자와 유전학자로 이루어진 `사회과학 유전학 연합 컨소시엄`에 소속되어 있는데 이들은 융합연구 증진을 목표로 한다. 이들은 최근 `유전자와 교육적 성취간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 생명과학과 의학을 비롯한 자연과학 부문에서 유전학적 분석이 성과를 거두자, 사회과학 분야에서도 유전학적 방법론을 적용하려는 움직임이 붐을 탔다. 갈러와 아시라프 논문을 계기로 벌어진 `유전적 다양성과 경제 발전의 연관성`에 관한 논쟁은 섣부른 유전학적 방법론이 사회에 미치는 파장이 얼마나 큰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유전학적 방법론으로 인간 세상을 설명하려는 시도 자체는 호평을 받을만하지만 정교하지 못한 방법론은 물론이고 연구 결과에 대한 자의적 해석이 유전적 결정론이나 인종주의를 부추김으로써 인종청소나 집단학살과 같은 대재앙의 불씨가 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허정윤기자 jyhu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