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식민지 개척을 위해 몇천년 전 출발했다 실종된 우주선 `무궁화호`가 우연히 발견된다. 주인공은 역사학회 후원을 받아 무궁화호에 남은 기록을 조사한다. 우주선 인공지능 `현애`의 도움을 받아 당시 사람이 남긴 일기를 읽어가며 주인공은 수백년간 여러 세대에 걸쳐 우주를 여행한 무궁화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된다.
그 중엔 우주여행 중 불치병에 걸려 냉동보관됐다 오랜 세월 후 깨어난 여성의 이야기가 있다. 자유로운 시대에 살았던 그녀가 깨어난 세상은 남존여비가 뿌리박힌, 완전히 달라진 세상이었다. 서로를 야만적이고 미개하다 여기는 두 문화 사이에서 그 여성은 어떤 일을 겪었을까.
우리나라 작가의 SF 소설이나 웹툰이 아니다. 캐나다 여성 인디 작가 크리스틴 러브가 쓴 비주얼 노벨 `아날로그:어 헤이트 스토리`라는 작품이다. 비주얼 노벨은 스토리를 담은 텍스트를 인터랙티브한 구성이나 게임적 방법에 따라 읽어가는 디지털 콘텐츠다. 선택지가 있는 일종의 전자 소설로 게임과 문학의 특징을 고루 갖고 있다. 글과 그림으로 나열되는 스토리 전개 속에 중간 중간 선택지를 골라, 독자의 선택에 따라 다른 전개와 결말을 보게 되는 형식이다. 이 작품에는 모두 다섯 개의 다른 결말이 존재한다.
크리스틴 러브는 조선시대 역사를 모델로 한 사회를 우주 배경의 SF 비주얼 노벨 속에 실감나게 되살렸다. 그는 조선 성리학과 여류 문인을 공부하며 당시 여성의 낮은 인권에 주목했고, 이를 주제로 작품을 만들었다. 해외 여성 작가의 작품에서 `남존여비`(NamJonYeoBi)를 접하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작품과 상호작용하며 내용을 파악해 나가는 동안 스토리에 깊이 몰입하게 되며,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넘나드는 콘텐츠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밝고 화사한 일러스트와 대조되는 어둡고 극단적인 내용으로 화제를 일으켰으며, 온라인게임 판매 서비스 스팀에서 3만회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최근 전문 번역가의 작업으로 한글화도 이뤄졌으며, 스팀에서 구매할 수 있다.
크리스틴 러브는 2010년 `디지털:어 러브 스토리`로 데뷔한 후 평단의 주목을 받아왔다.
한세희기자 hah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