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그렇게 판단이 안서나”

[기자수첩]“그렇게 판단이 안서나”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이하 생명연) 기관장 공모 논란이 과학기술계 대선 표심의 향배를 가를 가늠자로 떠올랐다. 생명연 원장 3배수 후보에 오른 `정당인` 배 모 전 의원의 진퇴 여부가 과기계를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 연임 같은 정부 인사 실패가 어디 한두 번이냐”는 자조 섞인 말과 함께 늘 힘없이 이리저리 밀리는 과기계의 처지를 비관하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배 전 의원이 과기계 관심 대상으로 표면화된 건 지난 10일 기초기술연구회가 발표한 생명연 원장 3배수 후보에 포함되면서부터다. 배 전 의원은 공모에 들어가기 1·2개월 전부터 `보이지 않는 손`이 개입돼 있다는 내정설에 휩싸인 상태였다.

최근 KAIST에서 열린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야당 의원들은 이구동성으로 `정당인`의 정부출연연구기관 진입을 질타했다. 도대체 정치인이 왜 전문성이 필요한 출연연 기관장 자리까지 욕심을 내 과기계의 분노를 자아내느냐는 것이 요점이다.

모 의원은 “배 전 의원이 공모 지원서 직업란에 `정당인`으로 당당히 올려놨다”며 질책했다. 배 전 의원은 제18대 대통령 선거 새누리당 경기도당 선거대책위원회 여성행복본부장과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소상공인 본부장을 맡아 활동 중이다.

의원들의 잇단 사퇴 요구에 김건 기초기술연구회 이사장은 “30일 열릴 이사회에 의원들의 의견을 전달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놓았다가 혼쭐이 났다. 어찌할 것인지 끝까지 지켜보겠다는 의원들도 나왔다.

상황이 이렇게 꼬이면서 재공모 여론도 제기됐다. 시끄러울 바에야 기관장 선정을 내년으로 넘기자는 것이다. 내년에 새로 구성되는 정부 몫으로 넘기면 이런저런 구설도 안 나올 것이라는 분석이다.

요즘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이런저런 일로 상당히 곤혹스러운데 아랫사람까지 양다리 걸친 모습이 결코 좋아 보이지 않는다. 자신이 지원하는 후보의 이공계 프리미엄을 밑에서 깎아내려선 안 된다. 새누리당 사람이 아니라 상대 후보 당을 보이지 않게 밀기 위해 전략적으로 그러는 것 아니냐는 농담 같은 소리까지 들어서는 곤란하다. 괜스레 과기계에 흙탕물 튀기지 말고 본업으로 돌아가라는 것이 과기계의 주문이다.

박희범 전국취재 hb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