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명장은 가벼우면서 무겁다. 종이 한 장이지만 누군가에게 어떠한 책무와 권한을 부여한다는 내용이 담기는 순간 무거워진다.
초등학교 학급 회장이든 공공기관장이든, 주는 사람이든 받는 사람이든 결코 가볍게만 느낄 수 없는 것이 임명장이다. 그래서 꼭 필요한 자리, 필요한 순간에만 주어지는 것이 임명장이다.
가벼운 듯 무거운 임명장이 요즘 정치권에서 특수를 누린다. 18대 대선을 앞두고 분야별 책임자나 위원에게 수여하는 임명장이 넘쳐난다.
여의도 새누리당사. ○○위원회, ○○본부, ○○단 등 수많은 조직 이름으로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임명장 수여식이 진행된다. 많게는 한자리에서만 100장, 200장에 이르는 임명장이 나온다.
도대체 이 많은 임명장을 누가 발급하고 관리하는지 경이로울 따름이다. 임명장이 넘쳐나니 종종 해프닝도 일어난다.
한 차례 임명장 수여가 진행된 뒤 사회자가 장내에 묻는다. “아직 임명장 못 받은 분들 다 나오세요.” “○시 ○○분대 순서 놓친 분들 나와서 받아가세요.” 요식행위도 이런 요식행위가 없다.
불평도 나온다. 행사장 밖에서 누군가 전화를 건다. “나도 받는 줄 알았는데 내 것(임명장)은 없네. 어찌된 일이에요.” 공식적으로 이름을 남겨야 하는데 생각대로 되지 않았나 보다.
필요한 사람에게 임명장을 준다는데 한 장이든 100장이든 무슨 문제냐고 반문하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무한 증식하는 임명장을 보고 있자면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대선 후보 캠프가 발행한 임명장이 어음으로 둔갑하면 어쩌나 하는 우려 때문이다. 임명장이 마치 새 대통령이 취임하는 내년 2월에 만기가 도래하는 약속어음 같다는 말이다.
채권자는 임명장을 받은 사람들, 채무자는 대통령 당선자와 집권 여당이다. 임명장이라고 쓰인 종이가 실제로 어음으로 바뀔 리는 없겠지만 여기저기서 임명장이 넘쳐나니 걱정이 돼서 하는 소리다.
이호준 대선팀 차장 newlevel@etnews.com
-
이호준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