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의 정보통신부 비사]<113>대통령직 인수위(1)

차기 대통령이 선출됐다. 권력의 추는 1997년 12월 19일을 기해 대통령 당선자 쪽으로 급격히 기울었다. 그게 세상인심이었다. 당선자의 첫 과제는 정권 인수였다. 각 부처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구성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12월 25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과 인수위원 명단을 발표했다. 위원장에는 이종찬 국민회의 부총재(국가정보원장 역임, 현 우당장학회 이사장)가 임명됐다. 그는 육사를 나와 전두환 정권 시절 민정당 창당에 참여, 11대부터 4선을 기록했고 민정당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인수위원으로는 국민회의와 자민련에서 각 12명씩 모두 24명을 확정했다. 국민회의에서는 이해찬(국무총리 역임, 현 민주통합당 대표), 조찬형(국회의원 역임), 임복진(국회의원 역임), 박정훈(국회의원 역임), 박찬주(판사, 국회의원 역임), 추미애(현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김한길(현 민주통합당 최고위원), 김정길(행자부 장관 역임), 김덕규(국회부의장 역임), 최명헌(노동부 장관 역임), 신건(국가정보원장 역임), 박지원(현 통합민주당 원내대표)씨가 임명됐다. 자민련에서는 김현욱(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함석재(현 변호사), 김종학(국회의원 역임), 지대섭(청호컴퓨터 회장 역임, 현 서울마주협회장), 이건개(현 법무법인 주원 대표 변호사), 정우택(해양수산부 장관 역임, 현 새누리당 최고위원), 한호선(농협중앙회장 역임), 이양희(국회의원 역임), 이동복(국회의원 역임), 최재욱(환경부 장관 역임), 조부영(국회부의장 역임), 유효일(국방부 차관 역임)씨가 포함됐다.

12월 26일 오후 5시 20분.

김 당선자는 서울 종로구 삼청동 교육행정연수원 인수위 대회의실에서 이종찬 위원장을 비롯한 인수위원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김 당선자는 이어 “겸손한 자세로 일하되 따질 것을 따지고 챙길 것은 챙겨 차기 정부 미래 청사진을 마련해 달라”고 당부했다.

인수위는 산하에 △정책분과위원회(간사 이해찬) △통일·외교·안보분과위원회(간사 김현욱) △정무분과위원회(간사 김정길) △경제1분과 위원회(간사 조부영) △경제Ⅱ분과위원회(간사 최명헌) △사회·문화분과위원회(간사 최재욱) 등 6개 분과위원회를 설치했다.

정보통신부를 다루는 위원회는 경제Ⅱ분과위원회였다. 경제Ⅱ분과위는 과학기술처와 해양수산부, 노동부, 농림부 소관이었다.

경제Ⅱ분과위원으로는 최명헌 간사와 박찬주, 지대섭, 한호선 위원이 활동했다.

인수위는 각 부처에서 필요한 인력을 파견 받아 정권 인수 작업을 진행했다.

정보통신부에서는 정책분과위에 안병엽 정보화기획실장(정통부 장관 역임)과 경제Ⅱ분과위원회 전문위원으로 이교용 국제협력관(우정사업본부장 역임, 현 한국우취연합회장), 행정관으로 강문석 통신위성과장(현 LG유플러스 부사장), 실무요원으로 이채옥 사무관(서울 강남우체국장 역임)이 인수위에 파견됐다.

이교용 당시 전문위원의 증언.

“인수위 요청에 따라 강봉균 장관(재정경제부 장관 역임, 현 건전재정포럼 대표)이 추천해 나가게 됐습니다. 인수위 1층 경제Ⅱ분과위에서 근무했습니다.”

강문석 행정관의 말.

“윗분의 지시를 받고 이튿날부터 인수위에 나가 근무했습니다. 어떤 이유로 제가 파견 나갔는지는 모릅니다.”

인수위의 위세는 대단했다. 인수위 분과위별로 소관 부처 업무보고를 받는 과정에서 위압적 자세로 큰소리가 터져 나와 마치 국정 감사장을 방불하게 했다.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업무 인계인수하러 온 것이지 조사 받으러 온 것은 아니지 않느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이런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자 인수위에 대해 `입조심과 몸조심`을 당부해 이런 물의는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다.

인수위 회의는 크게 세 가지 형태로 열렸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주재하는 회의는 매주 화요일 오후 4시 열렸다. 이종찬 위원장과 위원 24명이 참석하는 인수위 전체 회의는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오전 9시에 열렸다. 분과위 간사회의는 매일 오전 9시와 오후 2시에 열렸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정보화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그는 1982년 청주교도소에서 우연히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을 읽고 미래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임을 인식했다고 한다.

김대중 대통령이 자서전에서 증언한 내용.

“나는 정보화시대에 한국을 지식과 정보의 강국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것은 오래전 꿈이었다. 나는 청주교도소에서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을 읽고 깜짝 놀랐다. 그때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미래에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이 오는구나` 감옥에서 깊이 생각했다. 아무것도 없는 독방에서 인류의 미래를 설계했다. 피터 드러커가 쓴 책들도 흥미로웠다. `지식과 정보 강국`은 대통령에 당선돼 비로소 그 꿈을 현실로 바꿀 수 있었다.”

김 당선자는 후보시절 정보통신 분야 11개 항목을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다. 초고속 정보통신망 조기 구축과 1인 1PC 보급 운동도 그중의 하나였다. 그런데 초고속 정보통신망을 광케이블이 아닌 동축케이블로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보통신부는 2010년까지 32조원을 투입해 초고속정보통신망을 조기 구축한다는 계획이었다. 한국통신(현 KT)은 1995년부터 2002년까지 총 6450억원을 투입해 광케이블로 초고속 국가망을 구축하고 있었다.

이정욱 당시 한국통신 부사장(현 한국정보통신감리협회장)의 회고.

“큰일이었습니다. 산자부 입김이 작용했어요. 국회로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인 정호선 의원(현 세계학생UN본부장)을 찾아가 전후 사정을 알아보고 문제점을 설명했습니다. 이어 청와대 이각범 정책기획수석(국가정보화전략위원장 역임, 현 한국미래연구원장)을 만나 초고속망은 광케이블로 구축해야 한다는 점을 설명했습니다. 이 수석은 당선자의 대선공약이므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논의하는 게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수위 출범 후 경제Ⅱ분과위 최명헌 간사를 만나 이런 사실을 다시 소상히 설명했어요. 동축케이블로 구축할 경우 지금보다 정보화가 30년은 후퇴한다고 강조했어요. 최 간사가 인수위에서 양측이 참석한 가운데 토론회를 열기로 결정하더군요.”

이 자리에는 정통부에서 박성득 차관(현 한국해킹보안협회장, 한국모바일인터넷 이사회 의장)과 이정욱 한국통신 부사장, 산업자원부에서 한덕수 차관(국무총리 역임, 현 한국무역협회장), 한국전력 김정부 전무, 그리고 국회 과기정위원 몇 명이 참석했다.

양측은 각 한 시간씩 초고속망 구축 시 광케이블과 동축케이블의 장단점을 구체적으로 브리핑을 했다. 최 간사는 양측의 주장을 듣고 “정통부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산자부 측은 계속 토를 달았다.

1998년 1월 12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주관으로 `21세기 정보화 사회의 준비를 위한 공청회`가 열렸다. 김대중 정부의 정보화 정책을 최종 정리하기 위한 자리였다. 공청회에는 400여명이 참석해 대성황을 이뤘다.

이종찬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장은 공청회 인사말에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통치이념이자 주요시책인 정보화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균형 있게 조속히 추진돼야 한다”면서 “실업문제도 정보화를 통한 정보통신산업 육성으로 상당부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청회는 안문석 고려대 교수(현 명예교수)의 사회로 이천표 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현 서울대 명예교수)의 주제발표에 이어 이용태 한국정보산업연합회장(삼보컴퓨터 회장 역임, 현 숙명학원 이사장, 퇴계학연구원 이사장), 성기수 동명정보대 총장, 이기호 이화여대 대학원장(이대 명예교수), 남궁석 삼성SDS 사장(작고, 정보통신부 장관 역임), 이정욱 한국통신 부사장, 권태환 서울대 교수(서울대 명예교수), 허진호 아이넷 사장(한국인터넷기업협회장 역임, 현 크레이지피시 대표), 변도은 한국경제 주필, 김효석 중앙대 교수(민주당 원내대표 역임)가 토론자로 참여했다.

이천표 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은 `21세기 정보화사회의 준비`라는 주제발표에서 “구조조정과 경영혁신을 바탕으로 최근 경제위기 극복과 재도약을 하기 위해 정보화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이를 위해 우선 추진할 과제로 △전자상거래를 통한 고비용·저효율 구조개선 △원격금융업무의 확산을 통한 금융기관 경영합리화와 금융감독기관의 정보력 강화 △정보기술을 활용한 작고 효율적인 정부 구현 △교육·문화 분야의 콘텐츠, 소프트웨어 육성 △정보화에 대한 역기능 방지를 위한 법·제도 정비를 꼽았다.

이어 패널들의 토론이 이어졌다. 다음은 토론자들의 발언내용이다.

△이용태=우리가 정보화에 뒤진 것은 정부 정책 수립 부족과 미래에 대한 인식부족 탓이다. 대통령이 21세기 정보화 비전을 제시하고 적극 추진해야 한다. 정보화 사회 조기진입을 위해 컴퓨터 과목을 입시과목으로 채택해야 한다.

△김효석=과기처와 정보통신부 통합은 정보화 추진의 구심점이 없어져 바람직하지 않다. 정보통신부는 독립 부처여야 한다.

△남궁석=초고속망 조기구축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정보화교육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이기호=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을 하나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이는 잘못이다. 정보통신산업 육성을 위해 대학지원을 강화하고 여성 전문 인력 양성과 활용을 확대해야 한다.

△이정욱=정보화시대에 대용량 전송을 위해 초고속망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야 한다.

△허진호=정보화에 걸림돌이 되는 법·제도를 과감히 정비해야 한다.

△성기수=미국에서 기계공업이 농업 발전에 기여했던 것처럼 정보통신산업이 제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수단으로 활용돼야 한다.

△권태환=외국에 종속되지 않는 정보기술 주권을 확립하고 정보화가 원활히 추진될 수 있는 정보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날 공청회는 국가경쟁력을 높이고 지식정보사회로 일찍 진입하려면 정보화는 필연이며 특히 초고속정보통신망 조기구축이 시급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일부에서 제기된 정보통신부 통합론도 사전 잠재우는 자리가 됐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