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3년 계약직 마케팅 사원입니다. 정규직 여러분이 저를 3년간 어떻게 부려먹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3년전 곽덕훈 EBS 사장이 취임 초기 EBS 직원들에게 한 말이다. 곽 대표는 이 말을 잊지 않았다.
지난 3년간 매일 새벽 5시30분이면 `EBS 대표와의 대화` 게시판을 확인했다. 올라온 모든 글에 직접 댓글을 달았다.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 이에게는 자신의 전화번호도 남겼다. 잠들기 전 한 번 더 게시판을 확인했다. 지난 2010년 취임한 날부터 오늘까지 하루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는 EBS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시청자와 직접 소통이라고 생각했다. 곽 대표는 “한번은 EBS가 왜 학교 현장의 목소리를 담지 못하냐는 비판을 듣고 `학교란 무엇인가`라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게시판 덕분에 EBS가 좀 더 발전할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또 전화, 댓글로도 EBS에 대한 불만이 풀리지 않는 이는 직접 만나기도 했다. 곽 대표는 이런 소통으로 EBS안티가 EBS팬으로 변하는 과정을 많이 봤다며 웃었다.
퇴임을 앞둔 곽 대표는 지난 3년간 꽤 많은 성과를 이뤄냈다.
그는 줄곧 “한국 안의 EBS가 아닌 세계 속의 EBS가 돼야한다”는 말을 직원들에게 건넸다. 외국 포럼에 나갈 때도 곽 대표는 주머니 속에는 교육용 클립 등 EBS 콘텐츠가 저장된 USB와 아이패드를 갖고 다녔다. 한국 교육에 관심이 있는 이에게는 그 자리에서 EBS 콘텐츠를 직접 보여줬다. 곽 대표는 “사장이 앉아만 있으면 회사가 발전을 안 한다”며 “사장은 실적 좋은 마케팅 사원보다 더 열심히 뛰어야 된다”고 말했다.
지난 3년간 그의 화두는 EBS의 존재 이유였다. 그는 EBS가 왜 만들어졌는지를 알아야 시청자의 불만도 사라진다고 생각했다. 곽 대표는 “EBS는 학교 교육을 보완하기 위한 방송인데 취임 후 EBS를 살펴보니 학교 콘텐츠보다 다큐 등 다른 콘텐츠 들이 많았다”며 “학교교육본부를 만들어 공교육 보완에 신경 썼다”고 설명했다.
그는 교사를 대상으로 파견교사를 모집했다. 파견교사는 일 년간 EBS로 출근하면서 강의, 문제집 개발 등 EBS 강의에만 집중한다. 파견교사 제도를 시작하면서 학원 강사보다 상대적으로 수업을 못한다고 평가받았던 교사 출신 EBS 강사에 대한 학생들의 만족도도 올라갔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학교에서 교사들이 좀 더 수업을 쉽게 할 수 있도록 5~10분 내외 교육콘텐츠 클립을 모아둔 EDRB(Educational Digital Resource Bank)를 만들었다. 교사나 학생은 키워드나 단원명을 치면 관련 콘텐츠를 볼 수 있다. 현재 EDRB에는 5만여개 클립이 있다. 이에 대한 외국의 관심도 크다. 미국 PBS, 러시아 국영TV 등과도 콘텐츠 제공 협약을 맺었다.
3년간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는데 EBS를 떠나기 아쉽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손사래를 쳤다. 곽 대표는 “분명 취임 초기에 3년 계약직이라고 말했다”며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자고 다짐했고 부끄럽지 않게 일했다”며 “3년간 에너지를 많이 써서 나보다 더 많은 열정을 가진 사장이 와야 EBS가 더 발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달 임기를 끝내고 그는 방송통신대학 교수로 돌아간다.
전지연기자 now2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