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23년 전인 1989년 11월 9일 독일 베를린장벽이 무너졌다. 그 후 통일 독일은 통일비용으로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가 경제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국내총생산(GDP) 세계 4위인 3조4700억달러(2012년 국제통화기금(IMF) 기준)로 유로화를 지탱하는 경제대국이 됐다.
처음부터 서독과 동독이 관계가 좋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통일 전 양쪽은 TV까지 자유롭게 시청할 수 있을 정도로 공동 생활권을 향유했다. 잘나가던 서독이 동독을 향해 꾸준히 인적·물적 정책을 편 결과였다.
지금 남북한은 어떤가. 씁쓸하기 그지없다.
지난 2010년 천안함 사건으로 인한 524조치로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한 경협은 중단됐다. 남북 인적 왕래는 2008년 18만6775명에서 2011년 11만6061명으로 38% 감소했다. 남북 선박 왕래는 2007년 1만1891회에서 2011년 142회로 99%나 줄었다. 교류가 단절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굳이 독일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탈북 입국자 2만4000명 시대에 남북한 교류협력은 통일의 중요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 물론 국가안보나 퍼주기식 지원, 감성적 민족주의 등은 우리가 반드시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과학기술 같은 비정치적인 분야부터 남북 교류협력을 시작한다면 여러 문제점을 최소화할 수 있다. 국민 공감대도 얻을 수 있다.
과학기술이 남북 교류협력의 단초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이미 가능성도 봤다.
과학기술은 참여정부 당시 남북 교류협력 분야 중 상호 동의 아래 구체적인 하드웨어 조직인 `남북과학기술협력센터`까지 추진했던 남북 교류의 핵심 분야다. 지속적 협력을 위한 민족화해협의회까지 마련했었다.
21세기 과학기술은 지식정보의 신속한 교류를 전제로 다양한 융합을 가능하게 하는 촉매제다. 북한 과학기술의 발전은 자연스레 북한의 사회·문화 경계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될 것이다.
과학기술 협력은 북한이 가지고 있는 지하자원의 대중국 수출 의존도를 낮추고 남한 자원 수입 의존도를 일부 북한으로 대체해 상생 기반을 마련할 단초가 될 수 있다.
북한자원연구소에 따르면 북한은 주요자원 매장량 세계 순위가 금 7위, 철광석 10위, 희토류 6위, 마그네사이트 3위 등이다. 남한의 석유·가스를 제외한 주요 광물 수입액은 2010년 316억달러, 개발투자액은 26억달러나 되며 누적액은 수십 조원에 이르는 상황이다.
북한도 지난 6월 노동신문 사설에서 인민생활 향상과 강성대국 건설을 위해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식량이나 에너지 문제 등을 더 이상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해결해 보겠다는 뜻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북한이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남한이 아니더라도 중국, 러시아 등과 과학기술 협력으로 해답을 찾을 가능성도 높다.
물론 남북 과학기술 협력에 생각이 다를 수 있고 장애물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자원 탐사 및 연구, 생명과학(BT), 기계제작 등 남북이 상호 이익을 낼 수 있는 잠재 분야가 생각보다 많다. 특히 세계 최고 정보기술(IT)을 가진 남한과 북한의 생산 인력 및 산업의 결합은 양쪽에 새로운 성장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요즘 우리는 향후 5년간 대한민국의 큰 그림을 그리는 대선 드라마를 관람 중이다. 향후 5년은 통일시대를 맞이할 중요한 시기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과학기술자라고 해서 민족적 염원인 통일을 앞당기는 데 기여함에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차제에 국민과 과학기술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남북 과학기술 협력체` 구성을 제안한다.
정명애 ETRI 융합기술미래기술연구부장 machung@etr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