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기업에 남미는 `현금인출기`

스페인 기업들이 자국 재정위기와 유럽 경기침체를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남미 시장 덕분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12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럽 지역에서 얻은 손실을 메우기 위해 남미 시장을 `현금인출기(ATM)`로 사용하는 스페인 기업들이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모건스탠리 조사결과에 따르면 남미 기업의 15% 정도를 차지하는 스페인 기업들이 총 매출의 30% 정도를 남미에서 거두고 있다. 남미 자금시장에서 자금을 모아 본사의 급한 불을 끄는 업체들도 늘고 있다.

스페인 최대은행 샌탠더는 2009년 브라질 증시에 상장하면서 70억달러를 끌어모았고, 지난 달에는 멕시코에서 같은 방식으로 40억달러를 투자받는데 성공했다. 스페인 2위 은행 BBVA는 지난해 그룹 수익의 절반을 올린 멕시코 자회사 방코머를 상장할 계획이라고 지난달 밝혔다.

스페인 3위 통신사 텔레포니카는 남미 지사를 매각해 400억유로를 충당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 돈으로 570억유로에 달하는 빚을 갚을 방침이다. 남미 지사 매각 외에는 부채상환이 막막한 상황이다.

그러나 이처럼 남미 지사를 처분하거나 상장하는 것은 당장 급한 불을 끄는데는 도움이 되지만 장기적으로는 유럽 기업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수년 내 유럽에서 얻는 매출보다 남미에서 얻는 매출이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IE비즈니스 조사에 따르면 2015년이면 남미 지역에서 영업하는 스페인 상위 30대 기업의 현지 매출이 본국 매출을 추월할 전망이다. 실제로 텔레포니카는 이미 이 같은 일을 경험하고 있다.

이 때문에 오히려 남미 투자를 강화하는 기업도 나타나고 있다. 이탈리아 장비기업 에넬(Enel)은 칠레 지사에 80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호세 안토니오 오캄포 컴럼비아대 경제학과 교수는 “스페인 기업들은 `한번 나가보자`는 생각으로 큰 기대 없이 남미에 진출했다”면서 “그러나 지금은 그들의 가장 중요한 생존전략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용주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