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He·Li·Be·B·C·N·O·F·Ne(수헤리베비시 노오불래)` `F=ma` 원소 주기율표와 물리의 주요공식을 외우던 시절, 과학자나 의사가 미래 자아상이었다. 하얀색 가운을 입고 실험실에서 밤낮으로 비커를 들고 유리막대를 젓는 과학자. 청진기 하나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응급실로 졸린 눈을 비비며 달려가는 여 의사. 십여시간이 넘는 수술을 마치고 `성공적입니다`를 나지막히 읊조리는 외과의가 멋져 보였다.
![[여성과기인의 삶과 꿈]최정단 ETRI 자동차조선국방IT융합연구단 책임연구원](https://img.etnews.com/cms/uploadfiles/afieldfile/2012/11/15/355205_20121115113729_616_0001.jpg)
공대를 졸업하고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 원급으로 입소해 선임급, 책임급으로 근무하고 있는 지금도 한 손엔 7Kg 레이저 스캐너를, 다른 한 손엔 노트북을 들고 주차장 귀퉁이로 향한다. 자동차를 무인으로 주차하는 알고리즘을 실제 자동차에서 테스트하기 위해서다.
프로젝트를 수행한 지난 3년간, 어느 날은 6m 폴대에 장착해둔 카메라가 흔들리는 바람에 다시 보정하기 위해 교통신호등 점검용 크레인을 타고 올라갔다. 긴급정지 명령이 잘못돼 자동차가 화단으로 돌진하는 사고도 겪었다.
장애물을 인식하거나 어디가 도로인지 어디가 자동차가 가면 안 되는 곳인지 알아내고 주차에 관한 한 `김여사`에서 주차 달인이 되도록 자동차와 전투 중이다. 기계적인 면에서 자동차는 전투 상대이지만 소프트웨어(SW)에 관한 한 자동차는 논쟁 상대다. 자동차 부품은 수백 개지만 SW에 의한 논쟁 대상은 오직 3개. 조향과 브레이크, 가속 엔진이다.
명료하게 만든 프로그램 명령대로 움직이는 자동차를 볼 때 `SW쟁이` 심장엔진은 `위이잉~` 자동차 엔진을 따라 벌렁거린다. 프로그램 한 줄은 자동차도 배도 비행기가 기계 일지언정, 뇌를 심고 신경을 연결하고 생명을 불어 넣는 일이다. 일주일, 이주일, 한 달 여 만에 걸친 SW 점검 후에 찾은 오류는 단 한 줄의 명령 구문임을 알게 되었을 때, SW쟁이는 다시 한 번 생명을 살려낸 외과의와 비슷한 감사와 안도감을 느낀다.
직선과 평면이 만나면 평면 위에 하나의 점이 생긴다. 직선과 평면의 수식을 C프로그래밍 언어로 작성하고 수식에 의해 생긴 점을 모니터에 점으로 표시한다. 광원 위치를 정하고 광원으로부터 거리를 이용해 빛의 세기를 계산하는 프로그램에 의해 한 점은 비로소 사람의 눈에 빛을 발한다. 눈에 보이는 사물을 그대로 그려내기도 하고, 만화처럼, 때로는 유화처럼 모니터에 그려내기도 한다. 이것이 프로그래머 역할이다. 프로그램은 논리적이고 섬세하고 차분하게 집중력이 요구되는 분야다.
세상의 화두는 융합, 연결성, 소통이다. SW쟁이가 진정 세상의 중심에 있어야 함을 자신하는 이유는 모든 사물과 사람을 연결하는 HMI(Humnan machine interface)기술, 사람과 사람이 소통(Social Networking)하게 하는 기술 등 우리 현대인에게 엔지니어는 필수적인 존재이다.
어릴 적 꿈처럼 가운은 입지는 않았지만, 나에게 SW 연구원은 위대한 외과의 못지않은 위대한 엔지니어로서 하루하루를 채워 간다. 많은 것은 꿈보다 노력에 의해 이루어진다. 원했던 일을 100% 해야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도전과 해결을 통해 탄탄한 마음의 근육을 다져 가는 길이다. 실패로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발판으로 위대한 엔지니어가 되는 그날을 위해 SW쟁이는 오늘도 “왜 안 되지”를 머릿속에 품고 산다.
최정단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자동차조선국방IT융합연구단 책임연구원
(jdchoi@etr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