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에도 부품에서 완제품 제조·배포·판매로 이어지는 가치 사슬이 있듯이, 특허에도 가치 사슬이 존재한다. 특허권자는 특허기술에 관련된 생산자, 배포자, 판매자, 심지어 소비자 등 어느 누구에게도 특허료를 요구한다. 특허권자는 당연히 가치 사슬에 관련된 모든 업자에게 최대의 특허료를 받고 싶어 한다.
가령 다중초점렌즈 가공 핵심기술을 보유한 특허권자가 있다고 하자. 렌즈 핵심은 특수렌즈 반제품이다. 반제품을 제조해 도매상에 공급하는 회사에 특허료를 받는다. 도매상이 소매상에 공급할 때 특허료를 받는다. 안경 소매상이 특수 렌즈를 연마해 완성렌즈로 만들어 소비자에게 안경을 공급할 때도 특허료를 받는다. 이런 다단계 시나리오가 가능할까.
`특허소진 이론`으로 불가능하다. 특허물품은 시장에 배포되면, 취득자는 재판매나 처분할 수 있다. 원 특허권자는 제품에 관해 특허권은 더 이상 주장할 수 없는 것이 특허 소진이론이다. 일단 판매 제품에 대해 두 번 특허료를 받을 수 없다는 상식적인 이론이다. 특허권자가 직접 제조 판매하지 않고 라이선스를 주어 제3자가 제조 판매한 경우도 소진된다. 문제는 최초 판매가 특허 일부만 해당되는 제품인 경우다. 이 경우에도 특허가 소진된다는 것이 미국 대법원 유니비스 렌즈(Univis Lens) 판결(1942)이다.
국내 기업이 미국 왕연구소 PC의 핵심 특허를 인수했었다. 특허 핵심 부품인 CPU를 만드는 인텔에서 특허료를 받았다. 가치사슬을 내려가서 CPU를 이용해서 특허 침해 완제품을 만드는 대만 PC업체에 대해 추가 특허료를 받으려 했으나 무산됐다. 핵심 부품에 이미 특허료를 받아서 특허가 소진되었다는 것이다. 미국 대법원까지 간 `콴타(Quanta)대 LG` 판결(2008) 요지다.
물론 전문 지식도 필요하다. 첫째, 라이선스 계약에 조건이 없어야 소진이 일어난다. 둘째, 특허 청구항에는 장치항과 방법항이 있는데, 장치항뿐 아니라 방법항도 소진된다. 셋째, 특허 소진은 해당 나라에서 일어나야 한다. 미국 특허는 미국에서 최초 판매로 소진이 되어야 한다. 최소 판매는 제품의 제조 배송이 이루어진 곳 보다 라이선스 계약 협상과 체결이 해당국가에 있었느냐가 중요하다. 넷째, 크로스라이선스에 의해서도 소진된다. 삼성과 애플 소송에서도 삼성의 통신특허는 퀄컴과의 크로스라이선스 때문에 소진된 것으로 판결이 나왔다.
부품업체로 부터 낮은 특허료를 받더라도 소진이 된다. 상대적으로 특허료가 높은 완제품 업체에게 특허료를 받는 것이 유리하므로, 완제품 업체가 소송을 많이 받게 된다. 완제품 업체는 부품 업체에 특허 침해 시 손실보전계약을 맺어 부담을 더는 것도 방법이다. 특허 소진은 특허분쟁에서 창과 방패에서 특허 무효와 더불어 또 하나의 중요한 방패 역할을 하므로 숙지해야 한다.
고충곤 인텔렉추얼 디스커버리 부사장(ck.ko@i-discove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