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특허심사관의 심사처리 건수가 유럽보다 6배 가까이 많은 현실은 정부의 특허강국 구호가 얼마나 공허한 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무리 국가마다 환경이 다르다고 해도 6배는 지나친 차이다.
지난해 특허청심사관 한 명이 처리한 심사는 평균 271건이다. 유럽은 물론이고 연간 78건의 미국과 비교해도 3.5배정도 높은 수치다. 2011년 공휴일이 116일이니 주 5일 근무자 기준으로 249일을 일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하루에 한 건 이상 처리한 셈이다.
특허청 내부자의 말을 빌면 모든 심사관은 심사처리 할당량이 있다고 한다. 특허출원 기술의 난이도에 따라 점수는 다르지만 심사관 모두의 점수가 매달 집계된다는 사실은 같다. 집계 이유는 뻔하다. 근무평가 자료다. 평가와 관련 있으면 정확성보다는 할당량에 눈이 가는 게 인지상정이다.
미국 특허심사는 5일 동안 비슷한 사례를 발견하지 못하면 자동으로 통과한다. 우리나라 현실은 몇 시간 검색이 전부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심사관이라도 수없이 많은 특허 중에 단 몇 시간 만에 중복 여부를 가려내기란 쉽지 않다.
과도한 처리 부담은 높은 특허 무효 비율을 낳는다. 특허심사가 부실하니 무효 심결을 받는 경우가 당연히 높기 마련이다. 우리나라 특허 무효율은 특허심판원 심결 기준으로 작년 62.8%에 달한다.
고도의 집중도를 발휘하면 그나마 시간을 줄일 수 있겠지만 곧바로 열악한 근무 환경으로 이어진다. 특허청 심사관이 매년 50명 이상 사표를 낸다는 말도 들린다. 특허심사관 전체가 800명 안팎이니 적지 않은 수치다. 개인적인 이유도 있지만 업무량 부담이 크다고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최근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소송에서 알 수 있듯이 특허는 국가와 기업 경쟁력과 직결된다. 특허심사관 업무환경 개선이 시급한 이유다. 공무원 채용을 늘리기가 쉽지 않다면 선행 기술 조사를 민간에 맡기는 등 민간 노하우를 활용하는 방안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