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톱박스 대기전력 1W 이하 규제 추진 논란

에너지관리공단이 유료방송용 셋톱박스 대기전력을 1와트(W) 이하로 규제하는 방안을 추진해 업계가 반발하고 나섰다. 유료방송사업자는 대기전력 1W 이하 규제가 현재 기술로서는 구현하는 데 걸림돌이 많은데다 다른 가전제품과 형평성에 맞지 않다며 반대 목소리를 낸다. 에너지관리공단은 이에 대해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에너지관리공단은 최근 케이블방송, 위성방송, IPTV등 유료방송사업자를 불러 내년부터 셋톱박스 대기전력을 1W 이하로 규제하기로 하고 공청회를 개최했다. 에너지관리공단은 내년 7월 1일부터 셋톱박스 대기전력이 1W를 넘으면 `이 제품은 대기전력 기준에 미달합니다`라는 경고라벨을 붙일 방침이다.

대기전력이란 가전제품의 전원을 꺼도 플러그를 뽑지 않으면 발생하는 전기소비다. 전기연구원이 지난 6월 전국 105개 가구를 표본 조사한 결과 가정내 대기전력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기기는 셋톱박스(12.3W)로 나타났다.

유료방송업계는 대기전력 1W 이하로 규제하면 부팅속도가 늦어져 소비자의 반발을 사기 쉽다는 이유로 반대한다.

유료방송업계 관계자는 “에너지관리공단에서 주장하는 1W 이하로 대기전력을 유지하면 부팅시간이 대략 1분에서 1분30초가 된다”며 “리모컨으로 TV를 켜는 시간이 그만큼 길어지면 소비자들의 원성을 들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대기전력을 낮출 수 있는 칩셋을 구하기도 힘들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한 관계자는 “대기전력을 낮추기 위해서는 칩셋 사양을 제조업체에 요구해야 하는데 셋톱박스에 들어가는 칩셋업체는 전부 외국 기업이라 작은 국내시장을 위해 사양을 잘 맞춰주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유료방송업계는 올 연말부터 시작할 스마트 셋톱박스 공급에도 문제가 생긴다고 우려한다. 스마트 셋톱박스는 스마트 TV기능을 적용한 셋톱박스다. 방송업계 한 관계자는 “대기전력을 1W 이하로 규제하는것은 사업자가 스마트 셋톱박스를 만들지 말라는 얘기”라며 “단순 방송서비스 외 인터넷, 애플리케이션 이용 등 다양한 서비스가 가능하려면 기술적으로 대기전력을 1W 이하로 줄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다른 케이블업계 관계자는 “사실상 셋톱박스를 하나 개발에 1년 반 정도가 걸리는 데 이미 개발이 거의 끝난 스마트 셋톱박스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며 “전기절약은 동의하지만 에너지관리공단이 단계적인 로드맵을 그려 점진적으로 대기전력을 줄이는 방법을 사업자와 함께 고민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에너지관리공단은 대기전력을 1W 이하로 낮추는 것이 기술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반박한다. 공단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셋톱박스 공급업체 삼성, LG, 휴맥스에 확인한 결과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들었다”고 밝혔다.

소비자의 알권리를 위해서도 경고라벨 정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에너지관리공단 관계자는 “세탁기, 냉장고 등 제품은 에너지효율이 표기돼 있어 소비자들이 선택권을 가질 수 있지만 셋톱박스는 소비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유료방송사가 설치해주는 것이 일반화돼 있다”며 “셋톱박스는 대기전력이 사용한 만큼 나간다는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에너지관리공단은 사업자의 반발이 거세자 유예기간을 두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공단 관계자는 “내년 초부터 바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며 7월이 목표이기는 하지만 확정된 것은 아니다”며 “사업자에게 최소 6개월의 시간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대기전력 규제 숫자를 아직 1W로 정하지도 않았다고 덧붙였다.

지식경제부와 에너지관리공단은 2010년부터 국내 유통되는 모든 전자제품에 대해 대기전력 1W 정책을 의무화했지만 현재 셋톱박스는 `대기전력 저감 프로그램 운용규정`에 따라 기본구성 외 추가 장치마다 허용되는 소비전력을 추가로 인정해 최대 20W까지 허용된다.

전지연기자 now2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