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P, 부실 M&A로 10조원 감가상각…주가 폭락, 창사 이래 최대 위기

HP가 지난해 인수한 영국 소프트웨어 업체 오토노미의 분식회계로 88억달러(약 9조5000억원)를 감가상각했다고 21일 발표했다.

HP는 오토노미가 고의적으로 회계부정을 저지르고 비즈니스 상황을 속여 인수합병(M&A) 대금을 높였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오토노미 측은 이미 유명 회계법인의 감수를 받아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반응이다.

현재 HP는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영국 중대부정행위단속국에 공개적인 민·형사 수사를 요청했다. 하지만 주가는 10여년만에 최저수준으로 떨어졌다.

HP는 이날 4분기 실적도 함께 내놓았다. 매출은 전년 동기대비 21억달러 줄어든 300억달러로 감소했고 69억달러 적자를 냈다고 밝혔다. 적자는 대부분 오토노미로 인한 손실 공제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멕 휘트먼 CEO는 “오토노미가 비즈니스 상황을 속였다”며 “범죄 조사에 적극 협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자문역을 맡았던 딜로이트, KPMG와 바클레이즈 은행 등에게 책임을 묻고 오토노미 주주들이 받은 돈까지 환수하겠다는 의지도 표명했다.

HP는 지난해 8월 레오 아포테커 전 HP CEO가 퇴임하기 앞서 오토노미를 103억달러에 인수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당시에도 인수가가 지나치게 높아 무리수였다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그간 오토노미는 헐값에 하드웨어를 넘기면서 마진율이 높은 소프트웨어를 끼워팔아 손실이 없는 것처럼 처리했다. 여기에 하드웨어 수입을 라이선스 매출로 잡아 성장 잠재력이 높은 것처럼 포장했다는 것이 HP의 주장이다.

하지만 장기판매 계약이 많아 매출 전망을 산정하기 애매한 소프트웨어 업체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HP의 도의적 책임도 있다. 휘트먼 CEO도 당시 의사결정에 동참했기 때문에 책임을 회피하긴 힘들 것이라는 게 외신들의 전망이다.

오토노미 측의 공식 입장은 나오지 않았지만 마이크 린치 전 오토노미 CEO는 월스트리트저널과 인터뷰에서 “완전히 잘못된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HP가 이렇게 큰 금액이 잘못됐다는 것을 기업 인수 후 1년 후에나 알았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5월 HP가 회계부정 조사를 시작하면서 일선에서 물러났다.

허정윤기자 jyhu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