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은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성역이었다. 감히 요금을 올리는 것은 국민정서법에 저촉됐기 때문이다. 표를 의식하는 정치권은 물론이고 정부, 심지어는 언론에서조차 전기요금 인상 이야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시대가 변해 전기요금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받는 상황이 됐다. 지난해 말부터 몇 차례 전기요금도 올렸다. 그러나 전력난을 극복하고 스마트그리드와 신재생에너지 산업을 활성화하려면 전기요금을 더 올려서 현실화해야 한다는 게 일반론이다. 물론 산업계는 비용 증가로 경쟁력을 잃을 것이라며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대통령 직속 녹색성장위원회가 22일 전기요금제도 개편방향을 주제로 공청회를 개최했다. 전기요금 현실화와 관련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예전보다 덜 부담스럽다고는 하지만, 대선 정국에 그것도 녹색위가 전기요금 결정 구조를 포함한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서기까지는 적지 않은 용기가 필요했을 터다. 눈앞에 닥친 대선에 국민의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현행 전기요금 체계는 공공재 개념으로 정부가 결정한다. 정부는 물가 인상을 생각하면 전기요금을 올리기가 쉽지 않다. 최근 한국전력이 두 자릿수 요금 인상안을 발표했을 때 지식경제부가 난색을 표시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전기요금을 낮게 책정하고 공급을 최대한으로 해 온 정책은 전력산업 부실화를 초래했다. 한전이 적자에 빠져 주가가 내려가자 소액주주들이 수조원 규모의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적자의 늪에 빠진 한전은 전력인프라 유지보수에 배정하는 예산을 최소화했다. 온전한 유지보수가 이뤄지지 않은 데 따른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타날 기미를 보인다.
전기요금을 현실화해 가격 기능을 회복시키면 녹색성장의 대표 산업인 신재생에너지와 스마트그리드 산업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다. 비록 녹색성장을 표방한 이명박 정부는 저물어가고 있지만 새로 바통을 이어받을 정부는 국가 미래를 위해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