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남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의 연임 성공을 두고 `가시밭길`에 비유한 이들이 많다. 그만큼 연임 과정이 힘들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앞으로의 행로가 순탄할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김 원장의 대외적인 평가는 대체로 좋은 편이다. 인연만 있으면 정부부처 과장급까지도 기꺼이 찾아다니며 교류의 폭을 넓혀온 덕이다. 반면에 지난 3년간의 내부 평가가 썩 좋았다고 얘기하기 어렵다. 미뤄 놓은 숙제가 산적했다.
김 원장은 2기 취임사에서 핵심 과제 세 가지를 언급했다. 중대형 과제 위주의 연구개발(R&D) 연구환경 개선, 기초·원천기술 개발 등 안정 예산 확대, 특허 기술료 수입 증대 등을 꼽았다. 숙제의 큰 가닥은 명확히 인식한 셈이다. 김 원장은 이 세 가지 문제를 3차 방정식으로 놓고 풀어야 한다.
먼저 중대형 과제 자체가 기업 중심의 지식경제부 코드와 맞지 않는다. 평균 10억원짜리 과제를 20억원으로 끌어올리겠다고 선언했지만, 1000억원 이상인 초대형 과제가 전체 6000억원 R&D 예산의 절반이 돼야 한다. 그래야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같은 대박이 터질 수 있다.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이야기다.
안정 예산 확대를 위해서는 정부출연연구소 임무도 목적과 기초 중심으로 다시 설정해야 한다. 초대형 과제를 수행하다 보면 특허 기술료 수입 증대 문제는 저절로 풀린다. 현 R&D 구조로 수백억원, 나아가 수천억원의 기술이전 수익을 올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전체 예산의 1%밖에 안 되는 기술사업화 자금으로 기술 마케팅을 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김 원장이 출연연 사상 처음으로 이 같은 3차 방정식을 슬기롭게 풀어낸다면 다른 비전을 얻을 수 있다. 공교롭게도 세 번 연임했던 ETRI 기관장들은 모두 장관을 지냈다. 체신부 장관을 지낸 최순달 박사가 그렇다. 그는 ETRI 전신 한국통신기술연구소와 전기통신연구소, 전자기술연구소장을 지냈다. 경상현 장관과 양승택 장관도 각각 세 번 연임했다. 이후 연임자가 나온 것은 김 원장이 12년 만이다. 김흥남 원장은 정부출연연구기관 45개가 모인 과학기술출연기관장협의회 회장직도 맡았다. 내년에 닥쳐올 `출연연 거버넌스 개편` 바람을 어떻게 조율할지도 관심사다. 대통령이 누가 되어도 김 원장 `그릇`이 얼마나 되는지 재 볼 좋은 기회임에 틀림없다.
박희범 전국취재 hb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