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대만에서 만난 현지 언론인과 산업계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대한민국이 부럽다”고 입을 모았다. 그들이 밝힌 이유는 이렇다. 한국은 삼성과 LG 등 세계적 브랜드의 기술기업을 보유했을 뿐 아니라 문화적 측면에서도 싸이와 소녀시대 같은 한류 스타를 만들어냈다고 평가했다. 반면에 대만은 세계의 제조공장 역할에 집중한 나머지 내놓을 만한 글로벌 브랜드도 없고 창의적 콘텐츠 개발과 투자는 꿈도 꿔보지 못했다고 탄식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나라 대선이 가져올 경제·산업계의 변화에 부러움과 경계심이 뒤엉킨 감정을 내비쳤다. 기술산업 이해도가 높은 후보가 당선돼 거버넌스를 개편하고 공격적 정책을 펼칠 게 분명해 긴장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었다. 중소기업의 천국으로 평가돼 각 국 정부의 벤치마킹 대상이었던 대만이 중국과 한국, 일본 사이에서 압박받고 있는 현주소를 잘 드러내는 단면이었다.
일본은 언론과 산업계가 함께 반성문을 쓰는 중이다. 샤프뿐 아니라 소니·파나소닉 등 대표적 글로벌 기업이 줄줄이 국제신용평가회사로부터 `정크(투자부적격·투기)` 등급을 받자 그 충격이 일본 열도를 휩쓴다. 니혼게이자이는 지난주 `위기의 전자입국`이라는 기획기사 연재를 시작했다. 첫 번째는 샤프다. 샤프 관계자는 물론이고 경쟁사 임원, 전문가 등을 다각도로 취재해 함께 위기의 원인을 찾고 탈출구를 모색해보자는 취지다. 앞으로 소니, 파나소닉 등이 줄줄이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닛케이산업신문 등 다른 매체들도 위기 진단 기사에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정치·경제·사회 전반을 지배한 관료주의 문화와 갈라파고스 증후군 등에 통렬한 비판이 터져 나왔다. 일본 언론의 반성문이 큰 어려움을 겪는 산업계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상황 인식 제고 역할은 할 것 같다.
최근 가장 뼈아픈 반성문을 내놓은 것은 바로 중국이다. 지난 8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향후 10년을 이끌어 갈 새 지도부를 선출하는 공산당 전국대표대회 행사를 “반부패와 정치체제 개혁을 못하면 당도 국가도 망한다”는 반성문을 낭독하며 시작했다. 자신의 재임 10년 동안 중국이 고속성장으로 세계 주요 2개국(G2)으로 우뚝 선 성과보다 양극화와 부패가 심화돼 민심이 척박해진 과오를 스스로 밝히며 후임자에게 분명한 과제를 넘겨주었다.
21세기 동북아 시대, 제일 가까운 우방국이자 경쟁국들이 쓰는 반성문에서 우리나라는 결코 독립변수가 아니다. 매개변수일 수도 종속변수일 수도 있다. 대선이 20여일 남은 이 시점, 후보들의 동북아 경제·외교 전망과 정책이 아쉬운 이유기도 하다.
정지연 국제부장 jyj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