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의 몰락, 파나소닉·샤프의 적자 행진. 전자왕국 일본의 간판 기업 몰락을 두고 말이 많다. 경제연구소 등은 엔고와 전력난, 높은 법인세, 3·11 대지진 등 여러 가지 악재가 겹쳐 일본 전자산업이 나락에 떨어졌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세계 최고라는 자만심과 내수 시장을 고집한 결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잘라파고스(재팬+갈라파고스)` 현상이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무디스·스탠더드앤드푸어스(S&P)·피치 등 국제 신용평가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주요 일본 전자기업의 신용등급을 강등했다. 전자왕국 일본의 굴욕이다. 잃어버린 10년도 모자라 잃어버린 20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1980∼1990년대 워크맨 신화로 세계를 주름잡던 소니지만 지금은 어디에서도 `혁신성`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소니·파나소닉·샤프가 성공에 취해 있을 때 삼성과 LG는 연구개발(R&D)에 채찍을 가했다. TV 등 가전제품은 물론이고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휴대폰 시장도 석권했다.
산업 전문가들은 일본 전자산업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본이 걸어온 성공의 길을 보고 배운 우리 기업은 일본을 넘어섰다. D램을 시작으로 TV·냉장고·에어컨·휴대폰까지 세계 1위에 이름을 올리는 제품이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고 일본 전자기업의 몰락을 즐기고만 있을 수는 없다. 중국이 우리 뒤를 바짝 추격해왔고 일본은 아직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록 일본 전자산업의 상징인 소니·파나소닉·샤프는 위기에 빠져 있지만 일본 기업의 저력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일각에서는 일본 전자산업은 재기불능이라는 진단을 내리기도 했지만 성급한 판단이 아닌가 싶다.
지금은 몰락했다지만 일본은 전통적으로 가전 분야가 강한 나라다. 그리고 근간을 전자부품과 소재산업이 지탱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년 연속 무역 1조달러를 기록하며 세계 무역 8강에 진입했지만 대일 무역수지는 여전히 적자다. 무역 적자의 가장 큰 요인은 전자부품과 소재, 기계 수입이다.
일본 완성품 업체는 무너졌지만 부품·소재 기업은 아직 건재하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지난해 3·11 대지진 여파로 몸살을 앓기는 했지만 최근 전자부품 업체들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세계 1위 전자부품업체인 TDK는 지난 2분기(7∼9월)에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영업이익이 32% 늘어난 112억엔을 기록했다. 상반기(4∼9월) 기준으로는 영업이익이 41% 증가했다. 세계 2위 업체인 니덱도 상반기에 428억엔의 영업이익을 기록했고 세계 1위 적층세라믹콘덴서(MLCC) 업체인 무라타제작소도 2분기에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2% 늘어난 182억엔의 영업이익을 냈다. 이밖에 신코·다이요유덴 등 주요 부품기업도 흑자전환에 성공하는 등 저력을 과시했다.
일본 전자산업이 지금은 혹한기를 보내고 있지만 산업을 지탱하는 부품·소재기업이 건재한 만큼 언제든 회복 가능하다. 우리 기업이 일본을 제쳤다고 방심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주문정 논설위원 mj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