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 인수위의 PCS 특혜의혹 제기로 정보통신부 분위기가 뒤숭숭하던 1998년 2월초 어느 날 저녁 퇴근 무렵.
무거운 마음으로 장관실에서 퇴근준비를 하던 강봉균 정통부 장관(재정경제부 장관 역임, 현 건전재정포럼 대표)에게 뜻밖의 전화가 걸려왔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 김중권 비서실장(현 변호사)의 전화였다.
“정통부 장관입니다.”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인 김중권입니다. 급히 만났으면 합니다.”
김 실장은 법조인 출신으로 노태우 정부에서 정무수석을 역임했고 김 당선인 비서실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뒤에 새천년민주당 대표를 역임했다.
강 장관은 김 실장과는 한 번도 만난 일이 없었다. 강 장관은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무슨 일이기에 느닷없이 나를 보자는 걸까”하고 생각했지만 짚이는 게 없었다.
경제 관료로 외길을 걸어온 강 장관은 김 당선인 측근들과도 전혀 교류가 없었다.
두 사람은 서울시청 앞 플라자 호텔에서 배석자 없이 만났다.
“무슨 일로 저를 보자고 하신 겁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김대중 정부는 청와대에 정책기획수석을 신설합니다. 초대 정책기획수석을 맡아 주십시오.”
강 장관의 반응은 의외였다. 권력 이양기를 맞아 자천타천으로 차기 권력에 줄을 대려고 안달하는 사람들과는 정반대였다.
“누가 그런 말을 하던가요?”
“여러 사람이 강 장관이 가장 적임자라고 추천하셨습니다.”
“말씀은 고맙지만 사양하겠습니다. 저는 김영삼 정부에서 장관으로 일하는 사람입니다. 차기 정부 탄생에 기여한 바도 없습니다. 그런 중요한 자리에 저는 부적격자입니다. 참신하고 유능한 사람을 발굴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러지 말고 한 번 더 생각해 주십시오.”
강 장관은 “이왕 만났으니 저녁이나 같이 하자”는 김 실장의 제안조차 뿌리쳤다. 그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 장관의 증언을 토대로 재구성해 본 그날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이다.
김 실장은 김대중 당선인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었다. 청와대 조직개편에도 그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고 전한다.
이 작업에 관여했던 이강래 전 청와대 정무수석(16·17·18대 국회의원, 민주당 원내대표 역임)의 증언.
“청와대 조직개편 작업은 1998년 1월 시내 한 호텔에서 3박4일간 했습니다. 김 실장과 저, 그리고 장성민 전 의원(청와대 국정상황실장, 16대 국회의원 역임, 현 김대중 재단 이사)이 주도해 안을 만들었어요. 김영삼 정부 시절 11개 수석비서관실을 6개로 통폐합했어요. 당시 저는 정부조직개편 작업에 실행위원으로 관여했어요.”
이날 만남과 관련한 강봉균 전 장관의 회고.
“저는 임기를 끝내고 퇴임하면 대학으로 갈 계획이었습니다. 숙명여대에서 강의를 하기로 결정이 된 상태였습니다. 더욱이 현 정부 장관이 차기 정권에서 일하는 것이 마음에 내키지 않았습니다.”
강 장관은 이날 만남을 마지막으로 공직생활은 끝이려니 했다.
그런데 이틀 후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 측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이번에는 김 당선인이 `직접 만나자`는 전화였다. 차기 대통령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강 장관은 김 당선인과 안가(安家)에서 단독으로 만났다.
강 장관은 김 당선인을 멀리서만 봤지 악수도 한번 한 적이 없었다.
김 당선인이 강 장관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우리가 처음 만났지만 나는 강 장관을 잘 압니다. 지금 IMF 상황입니다. 나라를 위한 일이니 나를 좀 도와주시오.”
“저 말고 유능한 사람이 많습니다.”
“부탁입니다. IMF사태를 극복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강 장관은 김 당선인의 요청을 거듭 사양했다. 하지만 김 당선인의 `나라를 위한 일`이라는 계속된 설득을 더 이상 뿌리칠 수 없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강 장관이 말문을 열었다.
“정 그러시다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권력 핵심부에 들어가려고 치열한 로비와 경쟁을 벌였지만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은 일찌감치 강 장관으로 내정된 상태였다고 한다. 김 당선인이 강 장관을 직접 낙점했다는 게 김중권 실장의 증언이다.
김 당선인이 일면식도 없는 강 장관을 정책수석으로 점찍은 것은 강 장관의 탁월한 업무 능력과 소신 때문이었다. 강 장관은 경제기획원 시절부터 일 잘하고 똑똑해 이석채(현 KT 회장), 한이헌(청와대경제수석 역임, 현 한국디지털고등학교장)과 `기획원 트로이카`로 불렸다. 특히 아이디어가 많아 `꾀주머니`라는 별명도 얻었다.
2월 10일 오전10시.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가운데 김대중 대통령 당선인은 국정운영을 최측근에서 보좌할 청와대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 6명, 경호실장을 일괄 발표했다.
비서실장에는 김중권 당선인 비서실장, 선임수석인 정책기획수석에는 강봉균 정통부 장관, 공보수석에는 박지원 당선자 대변인(현 민주통합당 원내대표)을 각각 내정했다. 경제수석에는 김태동 성균관대 교수(정책기획수석, 금융통화위원 역임, 현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내정됐다.
강 장관의 발탁은 파격 인사였다. 현 정부의 장관을 차기 정부가 청와대 수석으로 데려가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없었다.
당장 김 당선인 가신 그룹과 당(黨)에서 격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누가 강 장관을 추천했나. 그 사람이 정권창출에 기여한 게 뭐 있는가.”
이런 내부 반발은 김 당선인이 강 장관을 직접 만나 설득했다는 사실이 전해지자 금세 조용해졌다.
김태동 경제수석 내정자는 지난 1992년 대선 때부터 김 당선인의 경제정책에 대한 자문역할을 해왔다. 그동안 학문과 사회활동을 통해 보인 개혁지향적인 성향이 김 당선인의 경제개혁 목표와 부합한다는 점이 발탁배경이었다.
대통령 비서실은 `권력의 꽃`이자 권력 핵심이다. 대통령 비서실은 대통령을 보좌하는 비서들의 집합체지만 그 파워는 막강했다. 국정 파악과 확인, 각 부처 애로사항 해결과 부처 간 이견 조정, 대통령에 대한 건의 등이 수석들의 기본 임무였다.
새로 짠 청와대 수석 진은 무엇보다 김 당선인을 도와 IMF체제로 대변되는 경제위기를 극복해나가는 `위기돌파 참모진`이라고 김 비서실장 내정자가 설명했다.
김 실장 내정자는 인선기준에 대해 “전문성과 개혁성, 도덕성, 지역안배 등을 고려해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했다”고 밝혔다.
강 장관이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으로 발탁되자 정통부 직원들은 모두 반겼다. 차기 정부에서도 정보통신정책이 일관성 있게 추진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김 당선인은 2월 12일 낮 국회 귀빈식당에서 수석비서관 내정자들과 상견례를 겸한 첫 회의를 열고 비서실 운영방침을 밝혔다.
김 당선인은 수석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눈 후 “장관들은 대통령과 함께 전체 업무를 의결하고 국무회의는 행정부처가 국사는 논의하는 자리며 수석비서관 회의는 정책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당선인은 “수석비서관의 역할은 대통령을 보좌해 대통령과 소관부처를 연결시켜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참모역할”이라면서 “수석비서관이 대통령의 비위를 맞추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 당선인은 이어 “수석들의 판단과 건의가 대통령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므로 대통령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정칙하고 공정하게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면서 “수석비서관들은 대통령이 추진해야 할 좋은 정책 개발에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수석 내정자들은 이날 오후 삼청동 대통령인수위 사무실에서 인수위로부터 새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 등 관련 분야별로 업무를 넘겨받았다.
새 정부 국정과제 중 정보통신 분야는 △정보화촉진과 1인 1컴퓨터 운동전개 △정보통신 인력양성과 핵심기술개발 △다채널시대 개막 및 디지털 TV방송 시행 등이 포함됐다.
수석내정자들은 16일 인수위사무실에서 김 비서실장 내정자 주재로 첫 간담회를 갖고 청와대 업무인계 문제를 논의했다.
강 장관은 이날부터 `두 집 살림`을 했다. 차기 정부의 정책기획수석 역할과 현 정부의 장관 일이었다. 이에 따라 박성득 차관(현 한국해킹보안협회장, KMI이사회 의장)이 강 장관을 대행해 정통부 업무를 처리했다.
강 장관은 2월 24일 오전 정통부 회의실에서 이임식을 갖고 1년 6개월간 몸담았던 정통부를 떠났다.
강 장관은 이임사를 통해 “정통부를 일등부처로 만들지 못하고 떠나 아쉽다”면서 “청와대에 가서도 정통부가 하는 일에 후견자 역할을 하겠다. 그동안 저를 끝까지 도와준 박성득 차관 이하 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이임 다음날인 2월 25일부터 김대중 정부 권력의 핵심인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으로서 근무를 시작했다. 그는 얼마 후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자리를 옮겼고 1999년 한국경제의 사령탑인 재정경제부 장관으로 승승장구했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