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산학은 현실에 있는 문제를 컴퓨터로 풀 수 있도록 개념화해 해결하는 학문이다. `어떻게 개념화 하는가`에서 시작해 실제로 풀어내는 방법, 그 환경 모두를 포함한다. 요즘 컴퓨터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이제는 컴퓨터가 사용되지 않는 영역은 없다고 할 만큼 다루는 영역이 넓다.
내가 연구하는 분야는 컴퓨터와 의료분야를 접목시킨 영역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3차원 공간을 컴퓨터 안에서도 만들 수 있다. 가상공간이다. 그곳에 우리 몸의 여러 장기를 표현해주고 이를 분석해 진단 할 수 있게 한다.
몸 속 사진을 찍어내는 초음파, 컴퓨터단층촬영(CT), MRI 등 의료영상기기가 만들어 낸 영상으로 컴퓨터에서 3차원 공간에 재구성하면 가상공간에서 수술도 할 수 있다. 의사가 수술 연습을 할 수 있고 수술 계획을 보다 정밀하게 짜 환자에게 적절한 치료를 제공하는 기반이 된다.
지난 주말 이 분야 관련 국제 학술대회에서 50여명의 발표자 중 1명만 여성이었다. 여성으로서 현실을 보자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여성이 과학기술 분야에 재능이 있는 것은 축하할 일이다. 앞서 가는 사람으로서 동반자가 있다는 것은 큰 행복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힘들 수도 있는 길을 걷는다는 것이 우려스럽기도 하다. 여성이 많지 않아 고속도로처럼 잘 포장된 도로가 아닌, 오솔길이나 막다른 길이 될 수 있다. 이럴 땐 길을 만들면서 가야 한다.
그러나 다른 시각으로 보면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여성이 가지는 희소성이 오히려 어려운 장애물을 넘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전문성이 우선되는 과학기술분야에서는 스스로가 확실한 전문성을 가지고 전진한다면 오히려 매력적이고 신나는 여정이다.
과학기술보다 더 어려운 것은 우리 주변에서 기대하는 여성의 역할이다.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며느리로서의 역할이 어쩔 수 없이 일부 희생일 때가 있다. 자칫하면 내 개인을 위해 생활이 바쁜 것으로 비춰진다.
내가 나의 얼굴을 직접 볼수 없고 거울에 비춰진 모습을 보고서야 알 수 있다. 내 성격을 스스로 적나라하게 들여다 볼 수는 없지만 다양한 상황에 반사되는 나의 생각과 행동으로, 그리고 주위의 반응으로 스스로를 깨우쳐 알 수 있다. 주변에서 개인 생활을 위해 바쁘다는 시각 때문에 스스로도 내 욕심으로 내 가족을 희생시키는 것은 아닌지 자격지심이 들기도 한다.
이럴 땐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모든 사람은 하나하나 소중한 각자의 소명이 있다. `밖을 보는 자는 꿈꾸고, 안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깨어난다`란 칼 융의 말처럼 나의 소명이 무엇인지 잘 귀 기울이는 지혜로운 여성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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