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마지막 달력 한 장만 남겨 놓았다. 과학기술계의 지난 1년을 되돌아보면 좋은 일보다는 꼬였던 일이 더 많았다. 정부와 정부출연연구소 간, 연구원과 연구원 간, 노사 간 `소통`을 외쳤지만 정작 제대로 된 `소통`은 부족했다. 과기계의 위상을 추락시키는 악재가 잇따라 터진 한 해였다.
올 초부터 대덕은 한국기계연구원의 기술정보 유출사건으로 시끄러웠다. 해당 연구원이 구속되는 것으로 마무리됐지만 국책연구기관 보안에 경각심을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과학기술계 거버넌스(지배구조) 개편과 한국과학기술원(KAIST) 서남표 총장 거취 문제도 주목을 끌었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산하로 정부출연연구기관을 옮기기 위한 거버넌스 개편 논의는 열매를 맺지 못했다. 정부 측과 정계, 과학기술계, 노조 대표 등이 자리를 함께하며 수면 밑 조율도 활발했으나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지난 4년간 허송세월한 탓에 동력도 바닥나 결국 유야무야 끝났다.
KAIST 총장 사퇴 요구 건도 과학기술계에 오점을 남겼다. 지난 2011년 학생 네 명의 잇단 자살로 촉발된 것이 올해 들어 총장 사퇴 요구로 번져 판이 커졌다. 정치적인 복선까지 깔리면서 대학 경영진을 상대로 이사회, 교수협의회, 학생들이 맞대결 양상을 보인 진흙탕 싸움이 전개됐다.
23년간 퇴근 없이 교실에서만 지냈다고 해서 `입실수도`로 알려진 권철신 전 산업기술연구회 이사장의 중도 하차도 아쉬움을 더했다. 시스템 경영 분야 국내 일인자였기에 출연연의 변화도 기대됐었다.
7월에는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정혁 원장이 갑작스레 숨지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과학기술계는 이를 두고 정부의 출연연 간섭 배제와 연구소 기업 대책을 주문하기도 했다. 10월과 11월 두 번에 걸친 나로호 발사 연기도 과학기술계의 가슴 아픈 이벤트로 기억됐다.
지난 1년을 돌아보며 깨우친 것은 남의 기술로는 세계 일등, 세계 최고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과학기술은 한 국가의 미래다. 과학기술을 맡고 있는 인력을 푸대접하고 잘된 국가는 없다.
출연연을 예산으로 좌지우지하는 정부 행태도 벗어던져 버려야 한다. 예산을 주는 상급기관이 마치 출연연을 `꼭두각시` 취급하면서 좋은 성과를 내기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창의성을 자발적으로 발현했을 때 최고의 연구 성과가 나온다.
최근 정부의 출연연 부분 정년 연장 정책이 노사 간 갈등만 촉발시켰다. 일부 기관에서는 노조가 플래카드를 곳곳에 내걸고 난리다. 공무원 정년이 내년부터 일괄 60세로 늘어나는 것과 비교하면 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 잇따라 제기됐다. 새 정부가 당장 이 문제부터 풀어보는 것은 어떨까. 첫 단추를 잘 끼워야 새해 달력에 좋은 일을 더 많이 기록할 수 있을 듯하다.
박희범 전국취재 부장 hb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