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전자산업계를 대표하는 단체. 전자산업으로 한국 경제 위상을 지금 위치로 올려놓은 일등공신. 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KEA:Korea Electronics Association)가 걸어온 발자취는 바로 한국 전자산업의 역사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물론이고 수많은 국내외 대·중소 전자업체들이 KEA로 소통했다. KEA는 공통 이슈에 힘을 합치고 경쟁 이슈에는 미래지향적 협의를 이뤄내는 창구가 됐다. 대한민국 전자산업 태동기부터 대표 단체로 활약하며 구축한 탄탄한 글로벌 네트워크도 KEA의 강점이다.
KEA의 위상은 조금씩 위축된 것이 사실이다. 전문 품목별로 세분화한 단체의 분가(分家)가 일부 배경이 됐다.
자립 기반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집안의 대들보가 빠져나가다 보니 자연스레 가세가 기울었다. 역할은 갈수록 무거워지고 일꾼은 점점 줄어들었다.
산업 자체만 놓고 보면 전자산업은 여전히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산업이지만, 해당 산업의 대표 단체인 KEA의 위상은 반대로 간다.
탄탄한 재정을 바탕으로 위엄을 지켜오고 있는 섬유·조선·철강 단체들이 부러울 뿐이다. 일부 사양산업 단체들보다 어려운 재무 환경 탓에 품위 유지조차 버겁다. 정부 지원 프로젝트만 쳐다보는 신세가 됐다. 그러다 보니 정부에 산업계 입장을 강하게 전달하려 해도 `말발`이 잘 안 먹힌다.
KEA는 전자산업계 단체를 아우르는 맏형이다. 그 위상에 걸맞게 설립 이래 쭉 한국 전자업계 대표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번갈아 회장직을 수행하며 중심축을 잡았다.
윤종용 현 KEA 회장도 삼성전자 CEO 시절 회장에 선임돼 약 9년간 많은 업적을 만들었다. 어려움 속에 지금의 글로벌 네트워크와 대표 단체의 명맥을 지켜온 힘이기도 하다.
내년 새 정부 출범과 비슷한 시기에 KEA는 이사회를 열어 새 임원진을 구성한다. 10년 전만 해도 임원진 구성은 전자업계의 최대 관심사였다.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임원진 구성은 전자산업 대표 단체의 위상과 직결돼 업계 이목이 집중된다.
한국 전자산업은 승승장구해왔다. 하지만 최근 전자산업을 둘러싼 내·외부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불안 요인을 기업들이 힘을 합치고 때로는 글로벌 공조를 펼쳐 돌파해야 한다. 한국 전자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개별 기업 단위의 경쟁력 이상으로 국가 산업 측면도 고려해야 할 시점이다.
그 소용돌이의 중심에 KEA가 있는 만큼 전자업계는 KEA 수장으로 명망 높은 인물을 옹립할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대야 한다.
대한민국 전자산업계를 대표하는 단체의 수장 자리를 떠밀려 맡거나 떠맡기는 존재로 전락시켜서는 안 된다. 업계 위상과 구심체는 업계 스스로가 만들어 가야 하기 때문이다.
심규호 전자산업부장 khs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