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대중소 상생’ 구호에 불과한가

[ET칼럼]‘대중소 상생’ 구호에 불과한가

지난 8월 시스템통합(SI) 기업인 S사와 정보기술(IT) 컨설팅 기업 A사를 예로 들면서 대중소 상생이 잘 되기를 바란다고 언급했었다.

A사와 S사는 전형적인 IT 하도급 문제로 대척점에 서 있다. A사는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지만 S사에서 돌아온 대답은 보증보험 청구였다. A사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으려고 공정거래위원회는 물론이고 대중소 상생 관련 기관을 수소문했다. 공정위는 사안의 성격이 맞지 않아 곤란하다고 회신했고, 다른 대중소 상생 기관은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처리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손사래를 쳤다. A사는 중소기업의 억울함을 풀어줄 신문고 역할을 해줄 것으로 믿고 찾은 기관들이 부담스러워 하며 다른 기관으로 떠넘기자 최후의 수단으로 법의 힘에 기대기로 했다.

법정 투쟁을 하는 과정에서 A사 직원은 1인 시위로 인한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 수사까지 받아야 했다. 몇 개월간의 법정 공방 끝에 최근 판결이 났다. 최선을 다해 억울함을 호소한 A사가 받아 든 판결은 `기각`이었다.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모든 일(단가 재협상, 경영 간섭, 부당한 직원 스카우트 등)은 배제되고 S사가 주장한 하도급법 위반에 관한 판결만 있었다. 두 회사가 계약서에 서명했고 A사가 계약서에 명시된 내용을 충분히 이행하지 못했으니 A사 책임이 크다는 것이다. A사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것을 알았지만 최소한의 업무 비용이라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안고 일을 시작했다. 결과는 허사가 됐다. A사는 항소할 여력도 없다. 법률 전문가가 버티고 있는 그룹 계열 대기업을 상대해 이긴다는 보장도 없다. 법적 분쟁까지 간 마당에 다시 대화로 풀 수 있을지 걱정이 한가득이다. S사가 사회적 책임과 상생을 중요한 덕목으로 내건 대기업이라는 데 한 가닥 희망을 걸어 보지만 `불감청 고소원(不敢請 固所願)`이다.

정부는 끊임없이 공정사회 구현과 대중소 상생을 외쳐왔다. 대중소 상생 프로그램을 가동해 남은 이익을 나눠 갖자는 `아름다운` 다짐도 있었다. 포스코가 모범적인 상생 프로그램 사례로 꼽혀 확산하자는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악화하는 시장 상황은 대중소기업 간 상생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내 앞가림하기도 바쁜데 남 챙길 여력이 어디 있느냐는 식이다. S사와 A사의 이야기는 수많은 분쟁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하도급에 재하도급이 난무하는 IT서비스 분야에서는 상존하는 일이다.

이번 건은 A사가 어려움을 딛고 재기하지 못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묻힐 것이다. 중소기업은 대기업과 사업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기도 하지만 포기해야 하는 것도 많다. 그러나 포기해야 하는 것이 해당 기업이나 핵심 기술, 인력이어서는 안 된다. 어디까지나 기업 대 기업의 일이고 서로 잘 해보기 위해 의기투합한 만큼 유종의 미를 거뒀으면 하는 바람이다.

주문정 논설위원 mj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