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31일로 예정된 방송의 전면적 디지털 전환이 이제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그런데 방송의 디지털 전환이라는 역사적 순간을 눈앞에 두고 일부 문제가 불거지면서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 선 것은 `클리어 쾀(Clear QAM)`이다. 클리어 쾀은 말 그대로 쾀을 제거했다는 의미다. 별도의 셋톱박스 없이도 수신기를 TV에 내장해 지상파 방송이나 공익 채널, 종교 방송 같은 무료 채널을 수신할 수 있게 한 기술이다. 저렴한 가격으로 지상파 채널, 보도 채널 등 20개 이상의 디지털 방송 채널을 이용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언뜻 들으면 클리어 쾀은 결코 논쟁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우리가 놓치기 쉬운 가치가 담겨 있다. 클리어 쾀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 시선을 방송의 디지털 전환이 가지는 의미, 이른바 초심으로 잠시 돌려보자.
`방송의 디지털 전환의 주된 목적`은 무엇이며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디지털 전환의 효과`는 어떠해야 하는가. 답은 의외로 명쾌하다. 정보 접근성 제고를 통한 정보격차 해소, 고화질 방송을 통한 시청 만족도 제고, 양방향 방송서비스 등 차별화된 신규 서비스 제공으로 방송 효용 증대, 디지털 콘텐츠 산업 기반 확보로 문화 주도권 강화, 산업구조 고도화 및 국민 경제 성장동력 확보 등이다. 이를 더 단순화하면 시청자 복지 향상, 산업구조 고도화의 신성장동력으로서 방송 산업의 정립이다. 결국 클리어 쾀 쟁점의 해소는 이 두 원칙을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달렸다.
클리어 쾀으로 수십개에 이르는 저가 채널을 시청자에게 제공하는 것이 과연 언급한 두 원칙에 부합할까. 나는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클리어 쾀을 도입해 저가 시장을 확대하는 것이 시청자의 콘텐츠 소비 효용을 반드시 높인다고 볼 수 없어서다. 단순히 콘텐츠 공급 방식이 무료라고 해서 시청자 복지를 충족하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어떤 콘텐츠를 시청자에게 제공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시청자에게 제공하는 콘텐츠는 수준 높고 삶의 질을 윤택하게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콘텐츠 품질과 경쟁력은 반드시 공짜 혹은 저가여야 형성되는 것은 아니며, 그 가짓수가 많다고 효용이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수백개 채널이 존재하는 일부 유료방송이 수준 낮은 콘텐츠 공급으로 오히려 우리의 삶을 방해하거나 시청자에게 외면받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산업적으로도 공짜 혹은 저가 콘텐츠는 유통 시장의 구조를 왜곡해 고품질 콘텐츠가 생산될 기반을 위협할 수도 있다. 콘텐츠 생산에 투입되는 비용을 고려할 때 일부 지상파 방송 채널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저가 콘텐츠나 광고성 상업 콘텐츠로 채워질 가능성이 높다. 방송의 디지털 전환에 따라 미래 산업 경쟁력으로 거론되는 양방향 방송서비스 등 차별화된 신규 서비스는 한마디로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우려는 방송산업을 산업구조 고도화의 신성장동력으로 정립하려던 두 번째 원칙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보다 앞선 미국이 클리어 쾀 도입에 따른 우려를 잘 보여준다. 미국은 이 제도를 전면 도입했다가 예기치 않은 산업 변수들이 제기되자 채널의 부분적 허용이라는 통제된 방식으로 선회했다.
클리어 쾀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 쟁점이다. 앞으로도 논란의 여지를 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쟁점의 해소는 어쩌면 가장 근본적인 원칙을 다시 한 번 되새기는 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방송의 디지털 전환이 산업계에 또 다른 갈등의 불씨를 남기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김광재 한양사이버대학교 광고미디어학과 교수 majesty2@par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