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음향기기를 제조·판매하는 A사는 해외 특허 라이선스 대행업체(라이선서) S사와 오디오 기술 특허 사용계약을 맺었다. A사에서 사용하는 특허는 3건 뿐이다. 이 특허 때문에 계약을 맺었지만 계약서에는 해당 특허가 포함된 모든 특허 풀 사용료를 지불하게 명시돼있다. 해당 특허권의 만료되는 시점이 지난해까지인데 불필요한 특허 만료기간 때문에 계속 사용료를 내고 있다.
#방송통신장비를 생산하는 B사는 칩셋 기술이 필요해 라이선서 R사와 특허 라이선싱 계약을 맺었다. R사는 해당 기술을 상표로 등록한 후 칩셋 개발업체에는 무료로 특허사용권을 주는 협력관계에 있다. B사는 기존에 공개 기술이었던 것을 상표만 등록했다고 사용료를 받을 수 있느냐 불만을 제기했지만 칩셋 제조업체와 연계해 부품 공급을 제한하면서 업체를 압박했다. B사는 어쩔 수 없이 라이선서의 모든 요구가 담긴 계약서에 사인했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이 피해를 감수하고 해외 라이선서와 특허 라이선싱 계약을 맺고 있다. 제품 생산에 반드시 필요한 특허를 사용하기 위해서다. 4~5년 전만해도 중소기업은 지식재산에 대한 정보와 이해력 부족으로 불공정 계약 체결에 대해 인식이 부족했다.
그러나 사업을 진행할수록 부당한 요소가 속속 드러났다. 독소조항에 가까운 계약서도 문제지만 시장에서 우월적 지위를 가지고 있는 라이선서의 불공정 거래 행위도 만만치 않다. 계약서를 바꾸자 요구하면 변명과 협박으로 수정을 금지한다. 한 중소기업 라이선싱 담당자는 “제조업체는 특허 라이선스를 받지 못하면 제품을 만들지 못한다”며 “이를 볼모로 계약서 수정을 금지하는데 거의 횡포 수준”이라고 밝혔다.
◇“특허권 위임받은 라이선서가 마음대로 수정도 못한다고 변명”
계약서 불공정 조항을 바꾸자고 업계에서 제안하면 라이선서는 이런저런 핑계로 수정을 하지 않는다. 계약서 문구를 바꾸려면 특허권자가 모두 합의해야하는데 한자리에 모여 논의하는 것이 오래 걸리고 힘들어서 요구조건을 들어줄 수 없다는 것이다. A사의 한 부장은 “부당 조항이 `맞다 아니다`를 판단하기도 전에 특허권자 핑계를 대며 반대한다”며 “특허권자 권리를 위임받아 에이전트(대행)를 할 수 있을 텐데 수정을 못하게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회사 영업비밀 정보 유출도 우려”
대부분 특허 라이선싱 계약서에는 라이선서가 계약업체에 사업정보를 요구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3~5년에 한번 씩 회계 감사를 수행하면서 실제 판매제품 수 등을 파악해 로열티를 제대로 받기 위해서다. 업계에서 우려하는 것은 감사 때 너무 광범위하고 깊이 있는 정보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중소기업 특허담당자는 “계약 업체가 거짓 보고를 하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어느 정도 정보를 볼 수 있지만 조직도·경영계획·거래처·수불부 등 영업전략 정보를 모두 파악하려 한다”며 “라이선서와 협력을 맺고 있는 다른 경쟁업체에 정보가 유출될까 두렵다”고 전했다.
◇“차별적 사용료와 비합리적 패널티 부과도 문제”
표준계약서에는 특허 사용료 가격이 책정돼 있지만 업체·국가별 적용이 불분명한 것도 지적됐다. 해당 특허 풀을 사용한 제품이 특허가 많이 등록된 판매국 사용료와 특허가 적게 등록된 생산국의 사용료가 똑같이 책정된다. 예를 들어 제품을 100여개 특허가 등록된 미국에 판매할 때와 1개 특허가 등록된 베트남에서 생산할 때, 로열티가 동일하게 적용된다. 한 방송통신장비 제조업체는 “가격의 합리적 매뉴얼이 없다”면서 “라이선서도 인정하는 부분이지만 해결책을 못 찾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경우에는 라이선싱에 대한 개념이 정착돼지 않아 특허 사용료를 받지 않는 경우도 있다.
불공정 사례가 속속 드러나고 있지만 국내 중소기업은 마땅한 대응책이 없다. 전종학 경은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는 “업체들이 특허 라이선스를 못 받아 사업을 접게 될까봐 쉬쉬하지만 특허 사용계약에서 불공정 거래가 만연한 것은 사실”이라며 “불합리한 계약은 계약자 사이에서 논의해 수정해 나가야 하지만 뿌리박힌 `갑을 관계` 문화가 이를 막는다”고 설명했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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