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노코(とらのこ, 虎の子) 기술유출을 막아라.`
요사이 잇따른 간판 전자기업의 몰락으로 체면을 구긴 일본에서는 기술유출 문제가 핫이슈다. 기술유출을 막지 못하면 산업 재건을 기대할 수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도라노코`는 본디 호랑이 새끼를 뜻한다. 매우 아끼는 비장품이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여기에 기술이 붙어서 기업이 가진 비장의 기술 또는 핵심 기술 정도로 해석된다. 일본 전자기업의 경영악화에 따른 지분 해외매각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최근 이 단어 사용이 부쩍 늘었다.
연초부터 거론된 대만 혼하이정밀의 샤프 지분 추가인수 계획이 지금까지 차질을 겪는 배경에도 기술유출 우려가 한몫을 한다. 위기극복에 필요한 자금을 댈 테니 샤프의 IGZO 기술을 달라는 혼하이에 경계심이 생겼다. 특수 산화물 반도체를 이용한 차세대 LCD 기술인 IGZO는 사실상 샤프의 미래가 걸린 `도라노코 기술`이다.
지난달 샤프가 희망퇴직자 신청을 접수·처리하는 과정에서도 기술유출 문제는 논란거리였다. 계획보다 1.5배 많은 희망퇴직자가 몰리자 우려 목소리는 더 커졌다. 회사가 “핵심 기술자만큼은 희망퇴직에서 배제했다”며 진화에 나선 것도 그런 이유다.
일본 반도체 기업 르네사스 살리기에 정부와 대기업이 발 벗고 나선 것도 궁극적으로는 기술유출 방지가 주목적이다. 일본 정부와 대기업의 공동자금인 산업혁신기구(INCJ)는 지난주 르네사스에 약 2조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INCJ 구성원인 도요타자동차, 닛산자동차, 덴소, 파나소닉, 캐논 등은 르네사스 제품을 사용하는 기업이다. 도라노코 기술을 외국 자본에 순순히 내어 줘서는 안 된다는 게 그들의 논리다.
온 세계가 기술유출 송사(訟事)로 시끄럽다. 세계가 경기불황과 산업침체의 늪에 빠져 수년째 허우적대다 보니 모두가 독이 오를 대로 오른 탓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300개 상장업체를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도 최근 일 년 사이 지식재산을 도둑맞은 기업이 15%나 된다. 이들 기업의 절반 이상은 산업스파이에 당했다. 애석하게도 기술을 도둑질한 산업스파이는 얼마 전까지 그 기업의 브레인이었다.
십년 전 벤처기업 거품이 꺼지고 불황의 골이 깊어지던 시기에 해외 출장길에서 만난 국내 기술자 둘이 기억난다. 그들은 이력서를 들고 미국, 대만으로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가 현지에서 기자와 조우했다. 회사가 어려워지니 더 늦기 전에 대비하자며 이국땅을 찾았다.
한 사람은 한 반도체 회사의 핵심 개발파트 부장이다. 다른 한 사람은 국내 소형 전동모터 기업에서 20년 이상 일한 베테랑이다. 둘 다 휴가를 냈으니 회사가 이 사실을 알 리 없다. 회사에는 비밀로 해달라 당부하던 그들의 눈빛이 지금도 머릿속에 선하다. 그들의 처지를 이해하니 나로서도 모르는 척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들은 해외 경쟁기업으로 직장을 옮겼다. 안타깝지만 불황기 우리 기업이 감수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다. 어쩌면 이런 일이 지금도 반복되는지 모른다.
일본은 기술유출을 막을 방안 찾기에 혈안이다. 경제산업성이 기술유출 방지 지침을 만들고 있다. 기술자에게 비밀유지 계약이나 서약서를 받는 기업도 늘었다. 현지 언론은 특히 한국을 조심하라며 연일 경고 메시지를 전한다. 어쩌다 도둑의 수괴 취급을 받게 된 우리지만 불황기 기술유출 문제는 우리 발등에도 떨어진 불이다. 중소기업 기술보호를 전담하는 공무원은 두 명, 연간 예산은 37억원. 이게 우리 현실이다. 기술유출 문제에서 사후약방문은 무용지물이다. 불황기 기술유출 방지를 위한 문단속 강화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리 없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긴장의 고삐를 늦춰서는 안 되는 게 바로 기술유출 문제다.
성장산업총괄 부국장 jhchoi@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