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전자 정보기술(IT)기기는 물론 자동차·선박에 이르기까지 세트 제품 제조 왕국이다. 하지만 아직 제조 핵심 인프라 측면에서의 높은 외산 의존도는 아쉬움이자 숙제로 남아있다.
최근 현대차 베이징 3공장 건설이 석 달 가량 지연된 사태가 단적인 예다. 자동차 조립라인 자동화 핵심 설비를 생산하는 한 외국계 업체가 납품 기한을 3개월 연기한다고 현대차 측에 일방적으로 통보하면서 공장 완공이 늦어진 것이다.
현대차 중국 공장 가운데 최대 규모 조립라인이 외산 장비 하나 때문에 3개월 무용지물이 된 것도 안타깝지만, 갑의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처분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더 황당하다. 이 사건은 글로벌 넘버원을 지향하는 한국 자동차 세트산업이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핵심 제조 인프라의 국산화가 얼마나 시급한 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자동차 엔진 조립 및 도장 공정에 사용되는 핵심 설비는 일본·독일 등 외국계 기업이 장악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실제 자동차산업 장비 국산화율은 50%를 넘지만 핵심 장비 국산화율은 20%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파악된다. 정몽구 회장이 직접 지시해 그룹 차원에서 핵심 장비 국산화에 드라이브를 거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기계·장비산업을 자동차 산업 도약의 근간으로 판단한 것이다.
중국을 넘어설 수 있는 힘은 바로 이런 부품 소재에서 설비, 그리고 세트로 이어지는 산업 생태계 전반을 아우르는 인프라에서 나온다. 독일 등 제조업 강국이 어려운 대내외 환경에서도 크게 흔들리지 않고 버틸 수 있는 모습이 이를 방증한다.
자동차는 명실 공히 한국의 대표 산업이다. 이제 그 세트 경쟁력을 바탕으로 부품·소재·설비 등 후방산업까지 확고한 경쟁력을 갖춰야 진정한 제조업 강국으로서의 면모를 굳건히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