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0월 21일은 36세 젊은 나이에 자살한 비운의 복서 김성준이 도미니카의 멜렌데스를 상대로 WBC 라이트플라이급 3차 방어전을 펼친 날이다. 멜렌데스는 그해 3월 1차 방어전에서 무승부를 기록했던 강자였다. 예상대로 경기는 15라운드까지 접전이 이어졌다.
수많은 펀치가 오고갔고 챔피언은 양쪽 눈두덩이 터질 듯 부어올랐다. 난타전이 이어진 후반에는 결국 피투성이가 된 채 싸워야 했다. 마지막 라운드에서 소나기 펀치를 퍼부은 챔피언이 심판 전원일치 판정승을 거뒀다. 국내 선수로는 처음으로 3차 방어에 성공한 순간이었다. 관중들은 혈전 끝에 거둔 승리라며 환호했다. 하지만 승자의 얼굴도 이미 만신창이였다. 그만큼 치열한 박빙(薄氷)의 승부였다.
이번 대선은 그 어느 때보다 예측이 어려운 `초박빙`이었다. 유력 후보 간 지지율 격차가 오차범위 안에서 맴돌았다. 개표과정은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근소한 차이로 승자와 패자가 결정됐다.
그런 만큼 선거전도 치열했다. 초반부터 거센 검증공세로 상대방 약점 들춰내기에 바빴고, 의혹만 있는 마타도어도 적지 않았다. 네거티브 난타전이 이어지면서 서로에게 많은 상처를 남겼다. 급기야 불법선거운동 정황이 포착돼 경찰이 수사에 나서기도 했다.
이제는 그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해야 할 때다. 패자는 겸허하게 결과를 받아들이고 승자는 넓은 아량으로 포용해야 한다. 샴페인을 터트리기에 앞서 선거운동 과정에서 벌어진 감정의 골을 메우고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화합의 제스처가 필요하다. 후보자들이 국민들에게 약속한 국민대통합은 그렇게 시작해야 한다.
`박빙`은 살짝 언 살얼음이다. 격차가 근소하다는 뜻이다. 지지해 준 국민들만큼이나 많은 국민들이 상대방을 지지했다. 당선인은 이 의미를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김순기기자 soonk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