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일본 대지진 이후 세계 에너지 산업에는 큰 변화의 흐름이 일고 있다. 세계 각국 정부는 에너지 생산의 주요 수단으로 여겨온 원전을 축소하는 한편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9·15 순환정전 사태`와 최근 원자력발전의 잇따른 가동중단과 관련해 에너지 생산과 사용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전기에는 몇 가지 특성이 있다. 우선 전기는 생산과 동시에 소비를 해야 한다. 또 생산지역과 소비지역이 다르다. 송배전 시설도 필수로 갖춰야 한다. 다시 말해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는 송배전선을 타고 가정이나 공장·사무실 등으로 이동해 필요한 만큼 소비 되고, 잉여전력은 대부분은 활용되지 못하고 사라진다.
따라서 에너지 효율제고를 위해서는 1차적으로 이러한 전기의 특성을 극복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 필요하다. 현시점에서 실현가능한 대안으로 꼽히는 것이 전력수급을 통신망으로 관리하는 스마트그리드다. 완벽한 스마트그리드 구축을 위한 선결 과제는 소프트웨어적 관리 보다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저장하고 운영하기 위한 하드웨어적 시스템, 즉 고성능 전지(Advanced Battery)다.
현재 세계 모든 국가에서 기업·정부 할 것 없이 고성능 전지 개발에 노력과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이유는 바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 이동수단의 핵심기술이기 때문이다. 고성능 전지는 조선·항공·로봇·의료기기 등 첨단산업에서의 중요성도 날로 커지고 있다.
다행히도 국내 2차전지 산업은 2011년부터 현재까지 명실 공히 세계 1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산업화가 시작된 후 10여년 만에 세계 시장점유율 선두에 올랐다. 올해는 2위인 일본과의 격차를 더욱 벌리며 소형부문에서 40%를 웃도는 점유율을 기록할 전망이다.
앞으로 확대될 친환경차나 에너지저장장치 등 중대형 시장을 생각한다면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다. 특히, 원천소재 분야에서 우리 기업은 일본 기업에 비해 절대적으로 취약하다. 친환경차, 에너지저장장치의 핵심인 고성능전지 기술 확보를 위한 연구개발(R&D) 지원규모 및 전문 인력 수급 상황 또한 상대적으로 열악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산업비전을 제시하고 전략적으로 산업을 육성해 나갈 전지산업 관련 전담부서가 없다.
이 시점에서 전지산업과 매우 유사한 상황에 있었던 반도체 산업과 디스플레이 산업의 상황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2012년 현재 메모리 반도체 부문 1위, AM OLED 및 터치 디스플레이 부문 1위를 선점, 독보적인 시장의 선두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들 산업도 시장이 급속하게 확대되기 전인 1990년대 초반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었던 정부 전담부서가 있었다. 전담부서의 체계적이고 전략적 육성정책을 통해 주요선진국을 뛰어 넘어 세계 1위를 차지했다는 사실이다.
전지산업은 정책의 집중도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현재 IT·전기차·에너지 부문으로 분산된 `전지산업 관련 부서`의 통합·신설이 필요하다. 새로운 차기정부가 국가의 주도산업을 고민하고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 우리는 주마가편(走馬加鞭)이라는 사자성어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에너지산업과 친환경차의 핵심 인프라가 될 전지산업에서 소형분야와 같이 세계 1위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달리는 말에 계획적이고 전략적인 채찍질을 해 줄 전지산업 전담부서 신설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 차기 정부는 향후 5년간 에너지산업과 차세대 친환경차 산업의 백년지대계를 세우는 발판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최갑홍 한국전지산업협회 부회장 kaphong7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