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이디엄]<126> 종범

눈에 보이지 않음. 사라져 없어짐. 혹은 존재감이 없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인터넷 게시물에 엑스박스가 뜨며 이미지가 표시 안 되면 `사진 종범이네요`라고 한다. 썰렁한 글을 올리면 `재미 종범`이란 댓글이 달린다. 회사나 학교에서 주변과 어울리지 않고 조용히 묻혀 지내면 `존재감 종범`이란 평을 받는다.

기아 타이거즈 이종범 선수 이름에서 유래했다. MLB파크와 디시인사이드 야구 갤러리 등 야구 커뮤니티에서 이종범과 양준혁 중 누가 더 위대한 선수인지 논란을 벌인 것이 출발이다. 선수 생활 중 기록을 비교하면 양준혁이 다소 우세한데, 이종범 선수 팬들은 “이종범 선수에겐 기록으로 드러나지 않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주장을 거듭했다.

다른 야구 팬들은 이를 반박하며 이종범 선수를 투명인간으로 묘사한 합성 사진들을 만들어 냈다. 이종범 선수가 경기장에 들어서면 “왜 경기 중에 타석에 아무도 없냐?” “방망이 혼자 움직여 홈런을 치네”라는 식의 글을 올렸다. 이 과정에서 결국 `종범`이 투명해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존재하지 않는 것이란 뜻으로 쓰이게 됐다.

비슷한 말로 `주영`이 있다. 축구 팬들이 박주영 선수가 중요한 시합에서는 제대로 활약을 못 하고 존재감이 없어진다며 비난한데서 유래했다. 코미디 프로그램 `웃찾사`에 등장한 투명인간 캐릭터 `동수`와 비슷하다.

18대 대선을 앞두고 실시한 대선 후보 3자 TV 토론에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가 박근혜 당선자를 몰아치는 과정에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존재감이 약해지자 `재인하다`란 표현도 등장했다. 문 후보는 이 후보 사퇴로 양자 토론이 된 3차 TV 토론에서 존재감을 회복했으나, 대선 후 예상되는 정계개편 과정에서 밀려날 경우 정말 `재인`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종범`은 인터넷 야구 커뮤니티에 만연한 지역색을 드러내는 표현이라는 인식도 있으므로 사용에 주의를 요한다. 형법에서 남의 범죄 행위를 도움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나 그 범인을 말하는 `종범`(從犯)과는 무관한 단어다.

* 생활 속 한마디

A: 회장님이 준비하는 480인조 걸그룹 어떻게 보세요?

B: 미모와 음악성 모두 종범이라 걱정입니다.

한세희기자 hah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