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은 혁신 벤처기업 인수합병(M&A)과 개방형 혁신(오픈 이노베이션)에 공격적이어야 한다. 스타트업·벤처기업은 한국 대기업과 아시아 시장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 통할 기술개발에 집중해야 한다.”
도론 데비 컨센서스비즈니스그룹(CBG) 이스라엘 최고경영자(CEO)는 한국 기술 기업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이렇게 요약했다. CBG는 영국 대표 투자그룹이다. 데비 CEO는 CBG 이스라엘을 이끈다.
데비 CEO는 “다국적기업도 자체 혁신을 해왔지만 보수적으로 진행하다 보니 기대만큼 결과물을 얻지 못해 결국 M&A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며 “한국 대기업은 성장단계상 다국적기업과 비교해 몇 년 뒤져 오픈 이노베이션 인식이 덜 됐다”고 진단했다. 그는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내부적으로도 구조조정이 뒤따라야 한다”며 “지금 당장 힘들어도 R&D 효율을 높이려면 오픈 이노베이션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스타트업·벤처의 기업가정신과 혁신성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해외시장으로 나가려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많은 한국 벤처는 한국시장만을 바라봅니다. 글로벌 비전도 기껏해야 중화권·일본 등 아시아 시장 정도입니다.” 그는 이 배경으로 삼성·LG와 같은 대기업이 존재한다는 점을 들으며 “삼성만 바라보면 회사 가치가 떨어진다. 삼성뿐만 아니라 애플·마이크로소프트까지 적용할 기술을 개발해야 가치가 높아진다”고 강조했다.
한국 기업에 씌워진 `카피 캣(모방 기업)` 이미지 탈피도 주문했다. 그는 삼성·애플 특허 소송전을 계기로 해외에서 한국 기업을 보는 부정적 시각이 확대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데비 CEO는 애플 소송전 사례를 들며 “애플은 자금력이 있으니 가능한 것이고 중소벤처는 대항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라며 “아시아기업은 지식재산(IP)에 좀 더 민감해야 하고, 이용할 때엔 명확히 대가를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소송이 애플에도 큰 이득을 주지 않을 것으로 봤다. 데비 CEO는 “기업은 혁신과 경쟁력 확보에 집중해야 한다”며 “다국적기업이든 작은 회사든 소송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봤지만 그것으로 근본적인 기업 간 경쟁구도를 바꾸지 못했다”고 말했다. 소송전이 이스라엘 혁신기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그는 “기본적으로 이스라엘기업은 소송에 의존하면 안 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CBG 이스라엘은 지난해 벤처캐피털업체 엠벤처투자와 첫 한·이스라엘 공동펀드(MaC)를 결성했다. 데비 CEO는 이 펀드가 이스라엘 벤처의 세계화 전략을 한국에 전수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2006년부터 CBG 이스라엘을 이끌었다. CBG 이스라엘은 인큐베이터센터와 벤처캐피털을 운영한다. 지금까지 200곳 이상 기업에 6000만달러(약 650억원)가량을 투자했다.
김준배기자 j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