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는 동북아 주요 국가의 정치, 사회 질서 재편에 따라 경제, 산업계가 큰 영향을 받는 한 해가 될 전망이다. 각 국 새 수장들이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정보통신기술(ICT) 정책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만큼 관련 산업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일 것으로 보인다.
오는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를 통해 공식 출범하는 중국 시진핑 정권은 지난 2011년 발표한 12번째 5개년 발전계획에 따라 양화융합 정책을 중점적으로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양화란 산업과 IT융합을 통해 선진화를 꾀하는 것으로, 새 정부는 앞으로 국유기업과 중소기업 양화융합을 적극 지원할 방침이다.
방송통신 분야 융합도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 국무원이 지난 2010년 발표한 방송망, 통신망, 인터넷을 하나로 융합하는 `3망 융합 사업추진계획`을 토대로 방송통신망 고도화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국유통신사업자는 국가광전총국에 방송서비스 허가를 신청하고 자회사를 통해 다양한 방통 융합 서비스를 제공한다. 민간 기업인 케이블 사업자 역시 마찬가지다.
이동통신 분야는 4세대(G) TD-LTE 상용화가 본궤도에 오르면서 관련 장비 시장이 내수 시장을 중심으로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차이나모바일은 올해 4G 가입자만 1억명 이상 유치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우리나라와 가장 많은 교역을 하고 있는 품목 중 하나인 디스플레이는 자국 산업계 육성에 보다 더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LCD 수입관세를 7~9%로 상향 조정하는 것이 대표적 예다. 이외에 `국가 중장기 과학기술 발전계획 요강(2006~2020)`을 토대로 OLED, 유연성 디스플레이, 생산 장비, 부품소재, 화학재료 등에서 기술력 제고와 정책 지원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은 아베 신조 총리가 이끄는 새 내각이 기존 민주당 정부와 달리 정부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의 보수적인 ICT 정책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자민당이 선거 과정에서 주파수의 공공재 성격을 강조한 것이 대표적 예다. 경매로 재원을 마련할 것이 아니라 할당 형태로 나눠줘 보편적 서비스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후속 조치에 관심이 쏠렸다. 폭증하는 무선 트래픽에 대응하면서도 보편적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정부와 관련 기업간 협조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디지털 방송 전환으로 남는 기존 아날로그 방송 대역 활용에 대한 의견은 아직 분분하다. 아베 총리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주파수 등 방송통신 분야를 전담하는 방송위원회(가칭)를 설립해 근본적으로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은 바 있어 총무성과의 역할 분담 등 거버넌스 개편도 예상된다.
뼈아픈 구조조정 시기를 지나고 있는 소니·파나소닉 등 간판 전자업체들의 회생을 위한 정책 지원 등도 단행될 것으로 보인다. 수출 경쟁력을 악화시키고 있는 엔고 문제를 해결하는 등 금융권을 통한 우회 지원이 예상된다.
우리나라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선거 과정에서 밝혔던 정보통신기술(ICT) 독임부처가 설립되는 지 여부가 가장 큰 관심사다. 그간 업무가 분산돼 콘텐츠(C)와 플랫폼(P), 네트워크(N), 기기(D)를 관통하는 생태계 조성이 어려웠다는 지적을 해소할 방안 마련이 관건이다.
박 당선인은 또 사회문화 규제를 담당하는 위원회, 콘텐츠 심의를 담당하는 위원회를 별도로 설치해 운영할 것으로 보인다.
이동통신 요금은 가입비를 폐지하고 서비스 경쟁을 활성화해 요금 인하를 유도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무선인터넷전화(m-VoIP)를 허용하고 선불요금 이용자 비중을 늘려나가는 한편, 요금 인가 심의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할 계획이다. 데이터 기반 요금제를 도입하고 단말기 유통 경로를 다변화해 스마트폰 가격 인하를 유도, 가계 통신비를 낮추겠다는 의지도 밝힌 상태다.
박 당선인은 망 중립성 문제를 이용자 중심에서 풀겠다는 원칙을 내세웠다. 플랫폼과 단말기의 중립성도 병행해 국민들이 차별 없이 자유롭게 소통하는 인터넷 공간을 구현하겠다는 청사진이다. 네트워크 인프라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공공 와이파이 핫스팟존 1만개 설치, 현재보다 10배 빠른 유선 인터넷 보급, LTE보다 40배 빠른 무선인터넷 개발 등도 추진하기로 했다.
한·중·일 3국 ICT 산업과 공동 운명체라고 할 수 있는 미국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집권 2기를 맞아 관련 산업계가 변화의 흐름을 맞게 됐다.
2020년까지 낙후된 시골까지 초고속인터넷 보편적서비스 확대하고, 망 중립성을 확보하겠다는 정책은 재원 마련 등에서 통신 대기업들과 지속적인 대립각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오바마 2기 행정부가 가장 우선에 두고 있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과학·IT 분야 투자를 확대하는 한편, 해외 우수 인력 유치를 위한 비자 제도 개선이 이뤄질 예정이다.
미국 기간산업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사이버 안보 문제도 선결할 과제로 꼽힌다. 금융이나 플랜트 등 고도의 보안성이 요구되는 민간 산업분야를 돕기 위해 정부가 지원할 근거를 만든 것이 바로 `사이버 보안 법안2012`의 골자였다.
이외에도 현재 미 의회에 상정돼 있는 온라인저작권침해금지법안(SOPA), 지적재산권보호법안(PIPA), 사이버정보보호공유법안(CISPA) 등을 매듭짓기 위한 후속 행보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정부의 과도한 개입을 허용할 수 있다는 점을 두고 반발하고 있는 이용자들을 설득하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표] 동북아 시대 주도할 4국 ICT 정책
허정윤기자 jyhu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