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반도체 후공정 업체들이 애플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생산 투자에 돌입했다. TSMC가 애플의 차세대 AP A6X를 제조하게 되면서 대만 후공정 업체가 생산 능력 확대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와 애플의 결별을 뒷받침하는 정황들이 속속 가시화했다.
3일 업계에 따르면 대만 ASE·SPIL는 약 5000억원을 투자해 플립칩(FC) 칩스케일패키지(CSP) 생산 라인을 구축한다. 두 회사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기업인 TSMC의 후공정 협력사들이다.
FC CSP 공정은 반도체 소자를 얇고 작게 만들 수 있어 AP 제조에 쓰인다. 양사는 대만뿐 아니라 일본·한국 업체에 스퍼터, 플립 칩 본더, 핸들러 등 여러 장비를 발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안에 AP 후공정 생산 시스템을 구축하고, 내년 양산에 돌입한다는 목표다.
대만 현지 매체에 따르면 TSMC는 1분기 애플향 A6X 시험 생산에 돌입한다는 목표다. 그동안 애플 AP는 삼성전자가 독점 생산했지만, 양사 힘겨루기가 본격화해 관계가 벌어졌다.
애플이 삼성전자를 대체할 파운드리 업체로 TSMC를 낙점했다는 소문은 지난해부터 흘러나왔다. TSMC는 지난해 150명의 백 앤드 레이아웃 디자인 엔지니어를 확보, 관계사 글로벌유니칩에 100여명의 설계 인력을 추가 배치했다. 애플 AP에 녹아 있는 삼성 설계 특허를 회피하기 위한 준비다.
삼성전자와 애플의 AP 독점 생산 계약은 오는 2014년까지 유효하다. 이를 감안하면 내년 하반기쯤 TSMC가 양산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애플이 위탁 생산을 맡기는 시기와 TSMC의 20나노 생산 공정 전환 시점이 거의 맞아떨어진다. 반도체 업계 한 전문가는 “애플이 TSMC에 20나노대 공정 투자를 제안했지만, TSMC 측이 거절했었다”며 “TSMC와 애플은 A6X용 28나노 공정뿐 아니라 A7용 20나노 공정 개발도 협력하는 것”으로 내다봤다.
애플의 AP 생산 이전은 국내 반도체 업계에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당장 연 3억개가량의 애플 AP 생산 물량을 대체해야 한다.
고부가 인쇄회로기판(PCB) 시장에도 지각 변동을 예고한다. 대만 업체들이 FC-CSP 반도체 기판(substrate) 시장에 본격 진입할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고부가 FC CSP 반도체 기판 시장을 삼성전기와 일본 이비덴이 양분했다. TSMC가 애플 AP 제조를 맡으면 대만 킨서스, 유니마이크론 등 현지 PCB 업체들도 고부가 반도체 기판 시장 진입 기회를 잡는다. 부품 업계 관계자는 “최근 미디어텍이 중국 AP 시장 점유율을 높이면서 대만 반도체 기판 업체들은 수혜를 톡톡히 봤다”며 “TSMC 덕분에 고부가 시장에도 진입한다면 국내 업계에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