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협박, 욕설까지…소비자가 진짜 왕인가?

며칠 전 금융감독원은 한 신용카드 이용자로부터 황당한 민원을 받았다. 자신의 이용한도 초과로 인해 아파트 관리비 납부가 4개월 연체됐는데, 카드사가 이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다며 연체금액 전액을 보상해달라는 요구였다. 이 고객은 똑같은 내용으로 청와대, 감사원 등에 6건의 민원을 제기했다. 카드사 직원에게 수십통의 전화를 걸어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붓기까지 했다.

연초부터 카드시장에 `블랙컨슈머`들이 기승을 부린다. 가뜩이나 수수료 체계 개편에 따라 무이자 할부 중단, 부가서비스 혜택 축소 등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는 카드업계로선 이만저만한 골칫거리가 아니다. 을씨년스러운 시장 분위기를 틈타 소비자권익을 앞세워 사적 이익에 눈이 먼 `이상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수법이 악랄해졌다.

이들 블랙컨슈머들은 사소한 꼬투리를 잡아 협박을 일삼거나 금융감독원, 청와대, 감사원, 여신금융협회 등에 똑같은 민원을 하루에도 수십 건 씩 투서한다. 주요 카드사들은 평균 100여명 가까운 블랙컨슈머가 있으며 이들을 제어할 묘수가 없어 답답함을 토로한다. “고객 응대가 형편없다. 정신적 피해금으로 100만원을 즉시 보상해라” “사장이 직접 와서 무릎 꿇고 빌어라” “ARS 이용이 불편하니 내 개인전용 상담채널을 만들어 달라” 등 황당한 요구사항이 줄을 이었다.

금감원에 따르면, 신용카드와 관련한 민원접수는 지난해 1분기(1월~3월) 1918건, 2분기(3월~6월) 2188건, 3분기(6월~9월) 2103건으로 분기별 2000건을 이미 넘었다. 블랙컨슈머의 90% 이상은 결국 웃돈을 챙겨 달라거나 연체비를 없애달라는 등 금전적 요구를 내민다.

문제는 이 같은 카드 블랙컨슈머를 구분할 기준이 없고, 금감원이 법적 강제력을 행사할 수 없다는 점이다. 진정한 소비자 권익을 보호하려면 악성 블랙컨슈머를 걸러낼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이들 때문에 선의의 카드 이용자 다수가 피해를 입어선 곤란하다. 금감원과 카드사는 블랙컨슈머의 정의를 명확히 내리고, 별도의 대응 매뉴얼을 만들어 이들이 발붙일 수 없도록 해야 한다.

길재식기자 osolgi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