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201조원, 29조원의 그늘

식상하다 못해 이젠 지겹다고 느낄만한 주제를 또 다시 꺼내야겠다. 삼성전자 이야기다. 대한민국 대표 기업이기에, 국가 산업 전반에 주는 영향이 또한 지대하기에 백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얼마 전 삼성전자는 지난해 201조여원의 매출액과 29조여원의 영업이익을 각각 달성했다고 밝혔다. 사상 최대 실적이자, 우리나라 기업 어느 곳도 상상못한 신기원을 이뤘다. 특히 전체 실적을 견인한 스마트폰 사업 연간 이익률은 무려 24%에 달했다.

삼성전자 스마트폰 협력사 가운데 이 정도 이익률를 내는 곳이 과연 있을까. 국내 업체들중 두자릿수 이익률을 낸 곳을 본 기억이 없다. 삼성전자 공급망에 편입됐다는 사실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더욱이 세계 경기 불황을 감안하면 분기가 멀다하고 옥죄어도 참고 견딜 수밖에 없다.

사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는 과거부터 협력사들에게 악명이 높았다. 문제는 갈수록 도를 더한다는 점이다. 어쩌면 삼성전자가 해를 거듭할수록 눈덩이 불어나듯 이익을 내는 것도 협력사 관리 강도를 높여 간 덕분인지 모르겠다.

최근 이런 일도 있었다. 삼성전자가 올해 출시할 신모델 갤럭시S4용 부품을 협력사들에게 개발하도록 하면서 단가 인하부터 요구하는 경우다. 해당 부품은 아직 시제품도 나오지 않았다. 샘플을 납품한 뒤 최종 승인을 내리면 가격 협상을 진행하는 것이 관례였다. 협력사는 샘플도 나오지 않았는데 가격부터 압박하는 것은 처음이라며 당혹해 했다. 심지어 갤럭시S3 초기 납품 당시보다도 더 싼 가격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극단적인 예일지 모른다. 그런데 삼성전자 협력사 가운데 이익률을 선의(?)로 조작하는 사례는 이미 흔하다. 생산성 향상과 원가 절감 노력을 통해 어쩌다 높은 이익률을 낸 사실이 드러나면 즉시 단가 인하 압박을 받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아닌 다른 고객사, 다른 제품으로 만회한 실적이라도 그렇다. 빠듯한 마진 구조를 유지하는 것이 삼성전자 구매 전략을 따르는 일이자, 삼성전자가 외치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는 일이다.

협력사들이 기근을 겪게 되면 후방 산업 전반에 도미노식 후려치기가 번질수 밖에 없다는 게 더 큰 걱정이다. 협력사들은 더 영세한 협력사들에게 고통 분담을 강요할 수 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새해 임직원들에게 막대한 성과급(PS·PI)을 푼다. 많게는 웬만한 중소기업 직원 한해 연봉에 맞먹는 돈을 나눠준다. 일년 간 누적된 업무 피로감의 보상이자 협력사들을 졸라맨 대가다. 그래서 삼성전자 식구들에게 성과급은 소위 `1년짜리 마약`으로 통한다. 삼성전자는 임직원들을 다그쳐 엄청난 이익을 얻고, 임직원들은 협력사들을 쥐어 짜 성과급으로 푼돈을 받고, 협력사들은 그저 연명할 뿐이고… 이 지겨운 먹이사슬 구조를 현실로 인정하는 일이 여전히 내키지 않는다.

서한기자 hse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