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여러분들처럼 이공계 출신입니다. 제가 전자공학과를 선택한 이유는 가난한 나라를 일으켜서 국민의 삶을 변화시키는 일이 바로 과학기술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주상돈의 인사이트]과학기술인 행복시대](https://img.etnews.com/photonews/1301/383081_20130123151441_121_0001.jpg)
얼마 전 과학기술신년인사회에 참석한 박근혜 당선인의 인사말이다. 처음으로 이공계 출신 대통령이 탄생한 것에 대한 반가움과 함께 과학기술인 행사를 직접 찾은 고마움에 박수가 터졌다. 박 당선인은 이어 “비록 지금 과학기술계가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지만, 과학기술이야 말로 미래성장 동력이자, 희망 그리고 과학기술 발전이 앞으로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도약하고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밑거름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며 각오를 피력했다. 역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어 당선인은 스스로 다짐했다. “저는 과학기술을 국정운영 기조로 삼아서 창의성에 기반한 새로운 성장정책을 펴나갈 것입니다” 박 당선인이 여러 단체들 가운데 올해 첫 신년 하례행사로 굳이 과학기술인을 찾아간 이유다. 당선인은 “국가 총연구 개발비를 높여서 고급일자리를 창출하고 안정적인 연구 환경을 조성해 과학기술인이 마음 놓고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반드시 그렇게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이야기들에 과학자들의 환호와 박수가 이어졌다.
과학기술 육성 의지는 박 당선자만의 얘기가 아니다. `과학은 21세기 대한민국의 꿈이며, 선진 일류국가로 비상하는 날개`라는 구호는 오랜 기간 숱하게 들어온 슬로건이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 대부분이 취임 초기엔 과학기술을 선진국 도약의 원동력으로 강조했다. 1990년대 김영삼 대통령도 일찌감치 `과학입국`을 선언하고 우주개발 장기발전계획을 수립하는 등 과기 선진국을 향한 강력한 의지를 비쳤다. 김대중 대통령 역시 과학기술처를 과학기술부로 승격하고 국가과학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과학기술을 중시했다. 연구개발비도 크게 늘렸다. 기술이사회 제도를 도입해 연구소들이 행정 간섭을 받지 않도록 했다.
과학기술에 대한 애정 순위에서 둘째라면 서러워할 사람이 노무현 대통령이다.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청와대 과학기술비서관 신설과 이공계 우대, 연구개발 투자 증액, 연구중심제(PBS) 및 인센티브 개선 등 과학기술 관련 공약을 쏟아냈다. 당시로선 모두가 파격이었다. 과기부총리제를 도입할만큼 노 대통령은 과학기술 부문에 전폭적 지지를 보냈다.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2013년 오늘, 대한민국 과학기술인은 불행하다. 위상과 처우가 예전만 못하다. 경제위기 이후 구조조정을 겪으며 이공계 인력은 퇴출 대상 우선순위가 됐다. 그만큼 현장 연구자의 불안감도 커졌다. 우수 인재는 과학기술을 기피하며 산업현장을 떠난다. 이공계 학생은 자신의 전공을 버리고 의대나 사법시험에 매달린다. 과학자의 자긍심에 걸맞은 사회적 인식과 대우가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알면서도 이를 외면하는 모순된 구조다. 정부는 매년 연구개발(R&D)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붓지만, 대한민국 과학기술인은 행복하지 않다.
박 당선인은 “새 정부에서 신설되는 미래창조과학부는 과학기술 정책과 창조경제 활성화를 전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과학기술이 창조경제를 이끌 가장 강력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창조는 연구실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유로운 사고와 대화 속에 이뤄진다. 자유로운 사고로 무언가를 창조하려면 행복해야 한다. 자부심 하나에 과학자는 스스로 움직인다. 과학기술인이 누구보다 먼저 행복해야 할 이유다. 결국 국민 행복시대도 과학기술인의 행복에 달렸다. 과학기술인이 불행한 나라가 행복해질 수는 없다.
주상돈 벤처경제총괄 부국장 sdj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