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문화로 읽다]최후의 비밀 L`ultime secret

프랑스 신경정신의학자 사무엘 핀처는 세계 체스 챔피온 자리에 올랐다. 인간은 이기지 못하리라 생각했던 컴퓨터 `딥 블루IV`를 향해 마지막 체크메이트를 불렀다. 그러나 그의 기쁨은 오래 가지 않았다. 그날 밤 핀처는 약혼자와 사랑을 나누던 중 사망한다. 연인의 품에서 황홀한 경험을 맛 본 그의 죽음. 그는 왜 죽은 것일까.

[과학, 문화로 읽다]최후의 비밀 L`ultime secret

소설 `뇌(원제 최후의 비밀 L`ultime secret)`를 쓴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2008년 한국을 찾았을 당시 그는 “과학자도 뇌를 설명하기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최후의 비밀이란 말로 베르베르가 밝히려 했던 것은 뇌를 통한 쾌락의 인지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쾌락의 끝은 어디일까. 이 질문의 답을 `뇌`에서 찾았다.

소설 속 핀처 박사는 뇌 속 한 점, 절정의 쾌락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을 찾았다. 식물인간이 된 그의 친구가 쥔 스위치에 연결된 기계장치는 전기를 통해 핀처박사의 뇌를 자극했다. 쾌락의 강도는 점점 강해지고 결국 그는 죽음이라는 절정을 맞게 된다.

키워드는 쾌감 중추와 전기 자극이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쾌감을 인위적으로 조절하는 매커니즘이 존재한다. 우리나라 1호 국가과학자이자 뇌 연구 분야 세계적 권위자인 신희섭 기초과학연구원(IBS)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장은 한국과학기술원(KIST) 신경과학센터장으로 있을 때 생쥐실험으로 이 원리를 확인한 바 있다. 신 단장은 “뇌에서 신경세포가 작동할 때 전기가 나온다”며 “전기 자극을 특정 부위에 주니 생쥐들이 좋아했다”고 설명했다. 실험하지는 못하지만 인간도 충분히 인위적인 뇌 자극으로 쾌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신 단장의 생각이다.

뇌에서 쾌감은 보상체계(회로)에 의해 만들어진다. 만족감과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보상체계가 활성화돼 핀처 박사처럼 쾌락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핵심 부분은 뇌 시상하부에 자리 잡은 배쪽피개영역(복측피개부, VTA)에서 측좌핵(nucleus accumbens)으로 이어지는 도파민 신경계다. 짧고 두툼한 신경 다발형태로 이뤄졌다.

핀처박사의 기계장치에 흐르는 전기 역할은 신경전달물질 `도파민`이 담당한다. 도파민 분비로 이 신경계를 자극할 때 인간은 기쁨을 느낀다. 달콤한 초콜릿을 먹는 여인을 떠올려보자. 살며시 눈을 감은채 맛을 음미하는 그녀의 뇌를 들여다본다. 도파민이 전류처럼 흘러 신경다발을 열심히 자극하고 있다. 물론 도파민 외에도 엔도르핀, 아편 유사물질계(EOS)도 인간에게 행복감을 줄 수 있다.

도파민은 체내에서 생성되기 때문에 `뇌안의 마약`이라고도 불린다. 고통을 잊게 하는 엔도르핀은 아편에서 추출한 모르핀 보다 100배 이상 효능이 강하다고 한다. 식욕과 성욕등 기본적인 욕구가 해소될 때 보상체계가 활성화 되는 것처럼 니코틴, 알콜, 코카인 등 물질도 이 보상체계를 통해 쾌락을 만든다. 담배를 피울 때 니코틴은 니코틴아세틸콜린 수용체와 결합해 도파민을 분비한다. 지속적인 쾌락을 위해 술, 담배, 마약을 찾는 이유다.

신경생물학에서는 이런 특정 화학물질에 의존한 쾌락이 정상적인 쾌락, 즉 기본적 욕구 해소나 행복감을 반감시킨다는 가설이 있다. 인위적인 물질이 인간이 정상적으로 쾌감을 느낄 때 사용하는 보상체계 능력을 감소시킨다는 것이다.

핀처 박사가 자신의 뇌를 활성화 시키고 좀 더 자극적인 쾌락을 위해 기계장치의 전류를 강하게 높인 것도 어쩌면 인위적인 쾌락의 대표적 예가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행복감, 가족과의 따뜻한 저녁식사, 이웃을 돕는 보람 등 착한 쾌락은 뇌에서는 더 이상 쾌락으로 인지하지 못한다. 외부에서 오는 쾌락 자극을 “좀 더! 좀 더!” 바란다면 중독이나 죽음에 이르기까지 절대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핀처 박사의 죽음으로 밝혀지는 쾌락, 그 최후의 비밀은 인간 뇌의 비밀이며, 쾌락의 비밀이다. `뇌` 외에도 `나무` `개미` `신` 등 여러 작품으로 새로운 상상력의 세계를 그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뇌는 “베스트셀러를 내려고 글을 쓰는게 아니라 글을 쓰는게 즐거워 글을 쓴다”고 말한다. 그의 `뇌`가 즐거웠던 작품 `뇌`는 쾌락의 비밀을 알려주기 위해 이런 질문 던졌을지 모른다.

“당신의 쾌락은 안녕하십니까.”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