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11월이었다. 중국에 공장을 세운 대기업 A를 따라 중국으로 진출한 중소기업 B. A가 사전 협의도 없이 결제기간을 30일에서 60일로 늘리는 통에 고초를 겪었다. 자금난을 해결할 길이 없어 B는 은행을 찾았다. 12% 대로 높아진 금리 때문에 은행의 힘을 빌리고 싶진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90일로 늘리겠다고 하는 A에게 통사정해 60일 결제라는 어이없는 `성과`를 위안으로 삼았다. 공정거래나 동반성장에 대한 감시의 눈이 곳곳에 도사린 한국에서야 이런 일이 잠잠해졌지만, 해외에선 여전히 비일비재하다. 같은 기업이라고 해도 한국과 중국에서의 행실은 천양지차라고 한다.
조금이라도 실적이 나쁘면 고통이 그대로 중소기업에 전가된다. 똑같이 어려운 상황이라면 대기업이 은행으로부터 자금을 빌리는 게 나을 터다. `중소기업은 8~12%라는 높은 금리에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지만, 대기업은 3% 정도면 융자를 받을 수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은행을 찾을 때마다 머릿 속에 멤돌았다. 아깝기도, 억울하기도 했다.
그런데 웬일일까. 툭 하면 결제기일 연장을 하던 A기업이 조용하다. 지난 해 말부터다. B는 이런 생각도 해본다. 새 정권 초기 눈치보기를 시작한 것인가. 시기가 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직접적인 이유를 알 길이 없으나 요즘 같아서 살 맛이 난다. 새 정권은 그 어느 정권보다 `중소기업`을 강조한다. 제 아무리 대기업이라고 해도 중소기업을 쥐어짜는 대기업으로 찍히는 게 좋을 리 없다.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이 분위기가 될수 있는 한 오래 가기를 바랄 뿐이다.
대선 기간 내내 수없이 들은 것은 중소기업이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 경제민주화를 이루겠다는 공약이다. 중소기업인들은 이를 듣고 간절한 바람을 담아 표를 줬을 것이다. 욕심이 결코 과하지 않다. 그저 약속만 지켜도, 예상 밖의 일만 일어나지 않으면 된다.
지난 해 대기업 스스로 동반성장하겠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런데 약속이란 게 하나같이 지극히 당연하다. 기술을 빼앗지 않겠다, 결제일을 지키겠다 등등. 경제민주화에 거창한 정책이 필요하지 않다. B가 겪는 상황이 새 정권 눈치보기가 아닌 말 그대로 정상적인 상황이면 된다.
성장산업부=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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