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전화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평소엔 모르는 번호가 찍힌 전화벨이 울리면 외면했는데 언제부터인가 기다리게 됐다. 조각 시즌의 단편이다. 5년 만에 한 번 오는 정권교체기인데다 조각을 앞두고 있어 정계와 관계, 학계는 그야말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엽관제도(Spoils System) 효과다. 엽관제도는 정권을 잡은 자가 공신들에게 관직을 나눠주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관직을 전리품으로 취급하는 제도다. 이른바 잭슨식 민주주의(Jacksonian Democracracy)다.
미국 역대 대통령 중에 누구보다 관직의 교대제를 강조하고 실천에 옮긴 이가 바로 19세기 초 잭슨 대통령이다. 교체임용주의를 통해 변화의 욕구를 관철시키고 핵심 지지자들의 권력욕도 해소시켰다.
현대에도 그럴까. 현대는 속도전의 시대다. 사회·경제·기술 발전의 속도와 복잡성에 따른 행정 기능의 분화와 전문화가 동시에 이뤄진다. 정당과 의회 역량이 뒤따를 수 없다는 얘기다. 민주주의가 발전한 구미 선진국에서 전문 관료제가 등장한 이유다. 정치적 중립성과 신분보장이 핵심이다.
우리는 어떤가. 형식적으로 보장됐지만 내용적으로 후진적 상황을 연출한다. 오히려 19세기 초의 엽관제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고위 관료직 뿐만 아니라 공기업, 출연연, 협·단체까지 엽관제도의 행태가 나타난다.
논공행상식으로 유지되다 보니 법으로 정한 임기조차도 채우기 어렵다. 정무직인 부처 장관 임기는 그야말로 임시직이다. 한 통계에 의하면 박정희 정권부터 이명박 정권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장관 임기는 평균 1.2년에 불과했다. 미국의 3년과 비교된다.
정부 정책의 일관성을 기대할 수 없게 된 이유다. 큰 틀의 비전과 미래성, 전문성이 스며들기 어렵다. 단기성과에 급급하다 보니 미래를 제대로 준비할 수 없다.
그렇다면 새 장관의 자격에 어떤 것이 있을까. 우선, 전문성을 갖춰야 할 것이다. 총리에게 화합과 법치, 소통의 덕목을 요구한다면 장관은 전문성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 상상개발(I&D) 시대의 창조경제를 견인할 창의적 인재여야 한다는 것이다. 테크노크라트의 핵심이 바로 실무형 장관으로부터 시작됨을 직시하라는 것이다.
다음은 도덕성이다. 위법·탈법을 한 자는 당연히 배제해야 한다. 국법을 준수하는 평균 이상의 도덕성을 갖춰야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수준이라면 더욱 좋다. 그런 의미에서 병역회피, 탈세, 투기사범이라면 곤란하다.
글로벌 감각을 갖춰야 함은 물론이다. 장관은 단순 정무직이 아니고 국가의 경영을 책임지는 부처의 수장이다. 자원이 부족한 나라의 장관은 응당 해외의 흐름을 파악하고 그 흐름을 국내 정치 혹은 정책에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언론 하마평에 오른 인사들을 보면 새 시대와 거리가 있는 사람들이 많다. 창의적·혁신적·통섭적 인사들이 아니라 한 자리 하겠다는 구 시대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오죽하면 `하마평`이 아니라 `추천사`라고 했을까. 산·학·관계의 숨어있는 제갈량을 발탁해 창조경제 시대의 키를 쥐어주라는 것이다.
하나 더 있다. 정치인을 가급적 배제했으면 한다. 당선인 측근도 마찬가지다. 한 자리 꿰차려 하는 정치인은 표플리즘을 숭상하고 미래를 소홀히 하기 쉽다. 정치인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한번 장관을 임명하면 정권 내 임기를 보장해야 한다. 그래야 책임 정책을 펼칠 수 있다. 지금처럼 논공행상의 덫에 걸려 1년마다 바꾸는 관행은 없애야 한다. 명심해야 할 것은 초대 미래부 장관이 박근혜 정부의 성패를 가름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박승정 정보사회총괄 부국장 sj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