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서 눈이 나빠지고 귀가 나빠진다. 눈에는 노안(老眼)이라는 손님이 찾아오고 귀에는 가는귀라는 불청객이 찾아온다. 노안으로 인해 가까운 데 있는 게 잘 보이지 않고, 가는귀를 먹어 작은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나이가 들수록 가까운 곳만 보지 말고 멀리 보라는 의미이고, 작은 소리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말고 세상을 울리는 큰소리만 들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닐까. 어차피 안 보이는 것을 억지로 다 볼 수 있는 시력도 없으며, 들리지 않는 작은 소리를 귀 기울여 다 들을 기력이 없어지고 있지 않은가.
나이가 들면서 모든 신체기관이 빠른 속도로 노화되어 간다. 그 중에서 특히 간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맛이 가면 삶도 같이 간다. 간이 가면 맛도 간다. “간이 나쁜 사람은 간을 맞춘 음식을 못 먹는 신세가 된다.” 손철주의 `꽃 피는 삶에 홀리다`에 나오는 말이다. 간이 좋을 때 그 고마움을 모르고 살다가 간이 나빠지고 더 이상 손 댈 수 없을 정도로 나빠지고 난 후에야 비로소 간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간이 안 좋으면 음식 맛을 내는 맛있는 간을 볼 수 없으니 얼마나 애석한 일인가.
`간에 기별도 안 간다`는 말이 있다. 웬만큼 먹어서는 위를 지나 간에 이르지 못한다는 말로 음식을 먹었지만 뭔가 부족한 상태를 지칭한다. 간에 기별이 가게 먹으려면 더 먹어야 한다는 말이다. 간에 기별이 가도 간이 대답하지 않는 상태가 되면 간이 심각하게 나빠진 경우다. 간에게 무리가 가는 줄도 모르고 과음을 계속하면 간이 붓는다. 그래서 `간덩이가 붓다`라는 말은 `간이 붓다`를 속되게 이르는 말로 `지나치게 대담해지다`를 뜻한다.
이런 점에서 흔히 겁이 없는 사람을 가리켜 `간이 크다` 혹은 `간이 부었다`고 말한다. `대담(大膽)하다`는 말은 쓸개(膽)가 크다는 말이다. 한의학에서는 오장육부의 하나인 `간장`을 `간` 뿐만 아니라 담(쓸개)까지 포함하는 의미로 사용하기 때문에, `간이 크다` 혹은 `대담하다`는 말은 결국 같은 뜻이 된다. 대담한 한 사람은 신속한 판단력과 과감한 추진력을 자랑한다. 대담한 사람은 서슴없이 뒤집어보면서 역발상을 시도하는 과정에도 남다른 능력을 보여준다. 그래서 대담(大膽)한 사람은 뒤집어서 봐도 담대(膽大)한 사람이다.
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010000@hanyang.ac.kr